우리 함께 걷는다는 것

2026년 6월 6일 충남 진산성지

by신미영 sopia

네 잎클로버 모임의 네 사람이 충남 금산에 있는 진산성지를 찾았다. 2025년 제천 배론성지 순례와 서울 순례길에 이어 세 번째 순례이다. 함께 기도하고 걷는 시간이 좋아 시작한 순례가 어느새 우리의 소중한 순례 여정이 되어 가고 있다. 진산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진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를 기념하는 성지로 한국 천주교 순교 신앙의 출발점으로 불린다. 성지는 신앙의 역사를 품고 있지만 건물은 새로운 모습으로 순례객을 맞이한다. 2023년 새롭게 봉헌된 진산성당은 유럽풍의 아름다운 외관과 성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성지를 둘러싼 순례길과 자작나무 숲 또한 아름다워 많은 이들이 찾고 있으며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오전 11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우리는 오전 10시에 도착했다. 먼저 야외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했다. 한 처 한 처 기도하며 걷는 동안 뒤이어 도착한 신자들도 자연스럽게 순례길에 동참했다. 믿음 안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진산성지 십자가의 길(위)와 진산성지 대성당,소성당(아래)

진산성지 주임 신부님께서 미사 시작 후 이날 참여한 본당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 강론 말씀도 40분 정도 길게 하시고 성지 소개도 꼼꼼하게 하셨다. 처음 강론 말씀은 앉아 있으면 졸리기 마련이니, 편하게 잠을 자도 된다고 하시며 신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기준은 셈법에서 다르다고 강론하셨다. 불행한 사람은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맞추며 생활하고, 행복한 사람은 얻은 것에 초첨을 맞추고 살아간다. 순교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죽임을 당하면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건 불평불만이 아니라 감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신부님께서도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젠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마음을 다 내려놓는 데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손해 보고 실패하는 것 같아 움켜쥐고 집착하지만 모든 걸 내려놓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을 얻게 됨을 강조하셨다. 우리는 웃고 웃으며 꽤 긴 시간의 강론 말씀을 들었다. 말씀을 정말 조리 있게 잘하셨다. 오늘 동촌성당 신자들은 여덟 대의 버스로 320여분이 성지를 방문해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한자리에 모여 드린 미사는 더욱 뜻깊고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진산성지 점심식사와 이태리 커피(위)와 동촌성당 신부님.수녀님과 함께(아래)

미사 후 점심식사는 성당 식당으로 가 음식을 접시에 담아 자리에 앉았다. 반찬이 특별하진 않았지만 야외에서 먹는 밥은 정말 맛이 좋았다. 식사 후에 지난주 남편과 이태리를 7박 9일 다녀온 아녜스가 에소포레소 커피를 줘서 빨대로 마셨는데 맛이 좋았다. 우리는 네 개의 커피를 맞대고 사진을 찍어 인증숏을 남겼다. 동촌성당 수녀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신부님을 모시고 사진도 찍었다. 동촌 신부님은 이번에 대구교구 부대주교님으로 가시는 김종강 시몬 주교님과 신학교 동기라고 하셨다. 우리는 갑자기 대구교구로 발령이 난 시몬 주교님을 사랑하기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물론 더 잘 돼서 가시니 축하드려야 할 일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며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숲은 전에 다녀간 벨라뎃다가 아직은 나무가 크지 않아서 안 가도 될 것 같다고 언질을 주었다. 우리는 성지에 가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혹시 넷이 이곳에 온 기념으로 성물방에서 살 것이 있나 살펴봤지만 딱히 없어서 아쉬웠다. 아래쪽 평상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곳으로 갔다. 진산의 특산품을 파는 곳인데 사는 분들도 있었지만 우린 주변의 경관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떠난 후 좀 더 있다가 차로 2분 거리에 있는 진산역사박물관 쪽으로 갔다. 본래 진산성당의 건물과 역사박물관이 모여 있어서 한 바퀴 둘러보고 청주로 출발했다. 오늘 순례의 의미와 공동체의 따뜻함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산성지 본래 건물과 역사 박물관

우리는 여유롭게 국도로 달렸다. 우리 본당에서 오래 신앙생활을 하다 이사 가서 서운동 성당을 다니고 있는 세실리아가, 오늘 예수성심 대축일 미사와 성시간이 있다고 가자고 제안했다. 오후 6시에 시작이며 떼제 성가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게다가 미사 후 육거리 야시장 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저녁시간임에도 많은 신자들이 특별한 미사에 참석했다. 보좌신부님의 주례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이곳 본당 주임 신부님께서도 워낙에 유쾌하시고 강론 말씀도 좋으셔서 인근에 있는 성당에 신자들도 이쪽으로 미사를 오는 듯했다. 그런데 마이크 성능이 좋지 않아서 독서나 복음, 해설 등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 아쉬웠다. 그래도 2층성가대에서 울려오는 떼제 성가의 소리가 미사의 거룩함을 충분히 채워 주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오늘 진산과 서운동 성지를 두 군데 갔고 연이여 미사에 참석하는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 미사가 끝나고 우리는 성당 뒷길로 해서 육거리 야시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막상 육거리 야시장에 가서 보니 생각보다 먹거리가 다양하지 않았고, 저녁식사로 먹을만한 것들이 없었다. 간단하게 야식으로 먹을 주전부리 정도였다. 그래서 저녁을 안 먹은 우리는 분평동에 누룽지 삼계탕집으로 향했다. 뚝배기에 끓여 나온 뜨거운 삼계탕과 죽을 먹으니 몸이 쫘악 풀렸다.

저녁식사 뚝배기 삼계탕
청주 성모병원

진산성지의 방문은 순교자들의 신앙을 기억하며 걸었던 순례길이었다. 함께 기도하고 웃으며 나눈 시간들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이다. 우리 네 사람은 장애인 활동 지원사로 일하고 있다. 신앙 안에서 누군가를 돕고 섬기는 삶이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해 선택한 길이다. 어제 6월 15일에는 벨라뎃다와 함께 호스피스 첫 봉사를 시작했고 선배 봉사자인 세실리아가 따뜻하게 이끌어 주었다. 내년에는 아녜스도 함께할 예정이다. 봉사의 길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작은 사랑과 위로를 전하며 그분들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 그리고 우리 역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며 선한 영향력을 나누고 싶다. 기쁨도 어려움도 함께 나누며 쌓아 갈 시간들은 또 다른 추억이 되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이어 줄 것이다. 배론성지와 서울 순례길 그리고 진산성지까지 우리의 발걸음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서로의 믿음을 북돋우고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순례였다. 앞으로도 함께 걷고 기도하며 순례 길 위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써 내려갈 것이다.


https://youtu.be/CwZT2zJAoP4?si=DR8Mj8w9kypl7h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