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았다
영화관이 좋았고
비디오테이프를 10개씩 쌓아 놓고 밤새우는 게 좋았다
부산영화제 티켓을 구하려고 밤새 박스 위에서 노상을 하는 순간도 행복했다
식비만 받고 영화제 자원봉사하는 것도 해맑게 뛸듯이 기뻤다
계단에서 영화를 봐도 행복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안 고팠고
배우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나에게는 너무 쉽게 찾아왔다
영화에 대해 연극에 대해
연기에 대해 삶에 대해
술잔을 기울이며 대담을 나누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는 세상
스텝으로 일을 하면서
영화를 한편도 제대로 보지 못해도
배우들의 뒤통수만 봐도
밤샘으로 여명을 맞이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더 펄펄 날아다녔다
영화 변두리에 있는 것조차 행복했다
영화현장에서 제작 프로듀서
피디로 불리면서
찜질방에서 잠을 자도 포근했고
허드레 일을 해도 마냥 신났다
소풍 온 기분이었다
영화 현장으로 빨리 뛰어가고 싶었다
계속 영화 촬영이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독이나 다른 스태프들이 들으면 처 맞을 소리인가)
경주마처럼 앞만 볼 수밖에 없는 경주마처럼
그냥 냅다 달렸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고
동만이 형이
동식이가 있어야 했다
누군가 나를 잡고 목적이 뭐냐고 물어봐줘야 했다
연극이 좋아서
대학로에서 월 백만 원만 받으면 살 수 있을 거라고
풋풋 풋내기 녀석이 세상 물정 모르고 떠들어 대던 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
붕신
고시원 월세 30만 원
식비 빵 한 쪼가리면 충분했고
밀크커피 한잔이면 땡큐였다
(원두커피에 맛 들여서 맛있는 커피를 에스뿌레소를 찾는 지금의 나는 흥 상상도 못 했다)
커피와 날씨 때문에 아프리카까지 갔다 온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
(에티오피아 커피 진짜 맛있다(둘이 마시다 셋이 기절할 만큼)
길바닥에서 파는 커피조차도 거기서는 예술 그 자체
아프리카 커피와 여유 내가 예언했지 분명히 그리워할 거라고... 무서운 년 딱 맞아
그때의 바람 공기 소리 향 여전히 눈 감으면 선명하게 떠올라 눈물이 날 정도로)
그랬다
철없던 서른 살(여전히 철은 없고)
K-장녀는 꿈을 좇아 달렸다
꼬꾸라져도 그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줄 알았다
서울극장
11월
영화 개봉 두둥
지랄 이 역사적인 날
소리 지르고 방방 뛰고 싶고
엔딩크레딧에 내 이름이 오 마이 갓
숨도 못 쉴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한 내가 졸라 웃겼어
배우들과 다른 스텝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종로 어느 술집에서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웃고 웃었던 그날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 캄보디아로 떠났고
그날 이후 아프리카로 떠났고
그날 이후 영화제는 가지 않았고
그날 이후 영화관(코로나 때문이긴 하지만)에 가지 않았고
그날 이후 멀어졌다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을 이루려고 사네
어떤 이는 꿈을 잊은 채로 살고
어떤 이는 남의 꿈을 뺏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은 없는 거라 하네
....
나는 누굴까
혹 아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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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무가치
박해영 작가님
나와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은가요
개 소름 돋게 만드는 이 드라마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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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졌어라고 내가 먼저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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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고 머리까지 어지러울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