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칵테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얼음 무역의 혁명과 유통을 통해 발전한 칵테일

by명욱


얼음이 바꾼 주류시장의 혁명, 칵테일과 하이볼의 미학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왔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것이 유리잔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얼음과 그 안에 담긴 차가운 칵테일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배우 이병헌이 무심히 던진 명대사,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할까"라는 말은 더운 날씨를 청량감으로 날려버리고 싶다는 본능을 자극한다. 비록 모히토와 몰디브의 위치가 뒤바뀐 언어유희였지만, 더운 날 차갑게 즐기는 한 잔의 낭만을 표현한 문장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칵테일 문화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의 칵테일 문화는 불과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술은 상온 또는 실온에서 마시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 상식을 바꾼 것이 바로 얼음 무역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출발해 적도를 지나 저 멀리 인도 캘커타까지 도달했던 거대한 천연 얼음 무역에 현대 칵테일의 배경이 있는 것이다.


칵테일의 조상, 인도에서


넓은 의미에서 술에 무언가를 섞어 마시는 문화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한국에서도 인삼이나 약재를 술에 우려내 마시던 인삼주처럼, 영양을 위해 다양한 재료를 섞던 음용 습관은 일종의 혼합 음료(Mixed Drink)라 볼 수 있다.


eb-tyoeb-punch-bowl-34467_Square.jfif인도에서 시작했다는 칵테일의 기원인 펀치. 5가지 허브 등을 술에 넣어 화채와 같은 느낌으로 즐긴 것이 특징이다. 출처 메리어트 봄베이 도쿄


그러나 현대 칵테일의 직계 조상을 보다 세밀하게 추적하면 17세기 인도의 전통 음료인 펀치(Punch)에 도달한다. 펀치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숫자 다섯(5)을 뜻하는 판차(pañca) 혹은 힌디어 판치(paanch)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름 그대로 독한 술, 단맛(설탕·꿀), 신맛(레몬·라임즙), 물, 그리고 향신료(정향, 넛멕 등)라는 다섯 가지 필수 재료의 비율을 뜻한다.


이러한 인도식 혼합 음료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선원들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유럽의 귀족들은 중국산 도자기 그릇에 다양한 과일과 비싼 설탕, 향신료를 넣고 국자로 떠 마시며 부를 과시하곤 했다.


얼음이 표본화되지 않았던 1806년 칵테일의 정의


칵테일(Cocktail)이라는 단어는 18세기 말엽부터 문헌에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분분하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는 멕시코의 한 선술집에서 비롯된다. 그곳에는 술을 저어 주는 데 쓰던 가느다란 식물 뿌리가 있었는데, 그 생김새가 수탉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현지인들은 이를 에스파냐어로 '콜라 데 가요(Cola de gallo)', 곧 '수탉의 꼬리'라 불렀다. 어느 날 이 선술집에 들른 영국 선원들이 그 뿌리로 술을 젓는 모습을 보고 이름을 묻자, 현지인은 "콜라 데 가요"라고 답했다. 선원들은 이 말을 자기네 말로 옮겼는데, 직역하면 바로 'cock's tail(수탉의 꼬리)'이었다. 그렇게 옮겨진 이름이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오늘날의 '칵테일(cocktail)'로 굳었다는 설이다.


이 칵테일의 공식적인 정의는 1806년 5월 13일, 뉴욕주 허드슨(Hudson)에서 발행되던 주간지 《더 밸런스(The Balance)》를 통해 정립되었다. 당시 편집자는 독자의 질문에 답하며 "칵테일은 모든 종류의 증류주, 설탕, 물, 그리고 비터스(Bitters, 약재를 넣은 쓴 술)로 구성된 자극적인 술"이라고 규정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얼음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당시만 해도 인류는 술을 실온의 물에 희석해 마셨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얼음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Ice_cutting_crew_at_work_-_NARA_-_285733.tif.jpg얼음을 수확하던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얼음왕의 등장, 그리고 얼음의 무역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얼음은 겨울에만 채취해 지하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극소수의 상류층만 누릴 수 있었던 희귀재였다. 이 얼음을 전 세계 대중에게 유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가 있었다. 바로 보스턴 출신의 사업가 프레더릭 튜더(Frederic Tudor)이다.


튜더는 1806년 매사추세츠 농장의 얼어붙은 연못에서 채취한 천연 얼음 130톤을 범선에 싣고 더운 카리브해 마르티니크 섬으로 첫 항해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이송 과정에서 얼음이 녹아내려 거듭 손실을 보았고, 채무자 감옥에 갇히는 등 여러 차례 파산 위기를 겪기도 했다.


World_Ice_Trade,_1856.png북미에서 출발해서 전세계를 일주한 얼음 무역선. 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그는 단열 기술을 지속적으로 연구했다. 목재소에서 폐기물로 무상 제공되던 톱밥이 짚보다 우수한 단열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선박 내벽 사이에 톱밥을 가득 채웠다. 또한 얼음을 정형화된 정육면체 블록으로 정교하게 잘라 틈새 없이 밀착해 적재함으로써 표면적을 최소화했다. 이 기술 혁신 덕분에 그는 보스턴에서 인도 캘커타까지, 적도를 두 번이나 통과하는 4개월간의 긴 여정 속에서도 180톤의 얼음 중 100톤을 녹지 않은 상태로 현지에 도달시키는 결과를 일궈냈다.


더운 지역에 있던 인도인들은 이 차가운 물질에 주목했다. 튜더는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고도의 마케팅을 펼쳤다. 현지 영국계가 운영하던 상류층 주점과 클럽의 술 서빙 담당자들에게 얼음을 무상으로 공급한 뒤, 얼음을 넣은 시원한 칵테일과 미지근한 음료를 같은 가격에 팔도록 유도한 것이다.


튜더의 이런 박리다매 전략은 인도뿐 아니라 미국 본토와 카리브해 시장 전반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얼음이 가장 흔하고 값싸진 미국에서, 얼음을 핵심으로 삼은 칵테일이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했다. 그 대표 주자가 1840년대 미국을 휩쓴 셰리 코블러(Sherry Cobbler)다. 셰리 와인에 설탕과 과일을 넣고 잘게 부순 얼음을 가득 채운 이 미국산 칵테일은, 미국을 여행한 영국 문호 찰스 디킨스가 그 청량감을 극찬하면서 유럽까지 얼음 칵테일 붐을 일으켰다.


Girls_deliver_ice._Heavy_work_that_formerly_belonged_to_men_only_is_being_done_by_girls._The_ice_girls_are_delivering..._-_NARA_-_533758.tif.jpg얼음 배달은 대표 일거리 중에 하나였다


여기에 셰리 코블러는 잔이 온통 얼음으로 가득해 마시기 불편하자 빨때까지 등장시켜 현대의 칵테일 모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결국 얼음 가득한 칵테일의 불편함을 빨대가 보완했고, 이러한 유형은 칵테일의 기본이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유럽까지 미국식 얼음 칵테일 붐이 일었고, 남북전쟁 직전인 19세기 중반에는 미국 선박이 실어 나른 화물 가운데 무게(톤수)로 따지면 면화 다음을 차지할 정도로 얼음 수출량이 막대했다.


위생의 위기와 인공 제빙기의 구원자, 카를 폰 린데


도시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강과 연못에서 채취한 천연 얼음이 오염원과 유해 미생물을 품고 있다는 보건학적 경고가 잇따랐다. 마실 수 있는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에 대한 대중적 요구는 기계식 제빙기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 기술적 장벽을 해결한 인물이 바로 독일의 과학자 카를 폰 린데(Carl von Linde)이다. 그는 기화 잠열을 활용한 현대적 압축 냉동 기술을 완성하여 냉장고와 제빙기의 기초를 설계했다. 린데는 1876년 암모니아 압축 냉동기를 발명하여 계절과 기후에 구애받지 않고 깨끗한 얼음을 상시 생산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바(BAR)문화의 지형도와 금주법이 남긴 홈술 유산


유럽의 펍(Pub)이 'Public House'의 약어로 마을 주민 공동체의 열린 사랑방을 의미했다면, 바(Bar)라는 말은 16세기 말 영국에서 술을 내주던 카운터, 곧 손님과 술을 가르던 긴 칸막이(barrier)를 가리키던 데서 비롯됐다. 다만 이 긴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바텐더와 손님이 마주 보는 사교 공간을, 칵테일과 결합된 하나의 '문화'로 완성한 곳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이후 1920년대 미국에 금주법(Prohibition)이 발효되자 일자리를 잃은 미국·미국식 바텐더들이 대거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미 19세기 말 문을 연 런던 사보이 호텔의 아메리칸 바(American Bar)는 이들을 받아들이며 1920~30년대 칵테일 문화의 전성기를 꽃피웠다.


동시에 미국 현지에서는 단속을 피해 집으로 숨어든 대중이 불법 밀주의 거친 맛을 가리기 위해 과즙, 설탕, 허브를 섞어 마시기 시작하며 홈바(Home Bartending) 문화를 촉진했다. 차가움과 믹싱의 결합은 사적 공간에서도 하나의 취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칵테일 조주시 마른 얼음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

최근 집에서 얼음을 이용해 하이볼과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칵테일 조주 시 가장 중요한 점은 외부 열을 차단하고 얼음의 표면적을 통제하는 것이다. 냉동실에서 갓 꺼낸 단단하고 마른 큰 얼음을 사용해, 얼음이 깨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회전시켜야 한다.


표면이 녹은 '젖은 얼음'을 쓰거나 격렬하게 저어 얼음을 깨뜨리면 표면적이 늘어나 불필요한 물이 과도하게 섞이기 때문이다. 하이볼 역시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신속하게 한두 번만 가볍게 저어 탄산 유실을 막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다.


중요한 것은 얼음이 단순히 음료를 차갑게 만드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얼음은 천천히 녹으며 적절한 양의 물을 공급해 알코올의 자극을 부드럽게 하고, 무엇보다 숨어 있던 향을 자연스럽게 펼쳐주기도 한다. 얼음이 바꾼 주류 시장의 혁명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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