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원래 차갑지 않았다

언제부터 맥주를 차갑게 마셨을까?

by명욱


맥주는 여름을 위해 존재한 술이 아니었다

습하고 더운 7월의 한여름, 일과를 마친 뒤 마주하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강렬한 탄산과 함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청량감, 그리고 보리의 단향과 구수함은 여름철 맥주가 가진 남다른 매력이다.


흥미롭게도 보리를 주원료로 하는 곡주를 증류하여 오크통에 3년 이상 숙성시키면 위스키로 분류된다. 위스키 풍미의 근간이 되는 원형이 바로 맥주인 셈이다. 이처럼 깊은 정체성을 지닌 주류가 오늘날 여름에 가장 화려하게 소비되는 현상은 원료인 보리의 성질과도 연결된다.


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자라는 보리는 전통적으로 찬 성질을 지닌 작물로 분류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는 겨울을 나지 않는 쌀로 빚은 막걸리가 따뜻한 성질로 여겨지는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draftbeer_KV.jpg출처 https://yonasato.com/


그러나 역사적 기록을 바라보면 맥주가 처음부터 여름을 위해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름철 맥주 양조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과거에는 여름철 맥주 양조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 세계 맥주 문화의 기준이 되는 맥주 순수령을 선포한 독일의 바이에른 공국에서 발효된 법령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계절에 맥주의 생산을 원천 차단했던 규제의 중심에는 1553년에 내려진 바이에른 여름 양조 금지령이 있었다.


바이에른 공국의 알브레히트 5세는 1553년, 매년 성 게오르기우스 대축일인 4월 23일부터 미카엘 대축일인 9월 29일까지의 기간 동안 공국 전역에서 모든 맥주 양조 행위를 금지하는 법령을 선포했다.


이 조치의 표면적인 첫 번째 이유는 화재 예방이었다. 맥주를 주조하는 과정에서는 필수적으로 맥즙을 장시간 끓여야 하므로 대규모의 화기가 사용된다. 그런데 유럽의 여름철은 예상외로 매우 건조하다. 당시 대부분의 양조 시설이 목조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었던 환경적 한계를 고려할 때, 여름철의 부주의한 화기 사용은 대형 화재의 도화선이 될 위험이 다분했다.


IMG_20180824_140549-1.jpg1670년 대 그린 런던 대화재. 작자 미상


게다가 이 시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본격적인 농번기와 일치했다. 밀과 보리를 수확해야 하는 중대한 시기에 귀중한 노동력이 양조장으로 분산되는 것을 막고, 농업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키려는 통치자의 목적도 작용했다.


그러나 화재 예방보다 더 과학적이고 핵심적인 내재적 요인은 한여름의 고온이 유발하는 생물학적 산패 문제였다. 기온이 상승하는 여름철에는 맥주가 쉽게 오염되고 시어버리기 일쑤였다.


당시 바이에른은 1516년 제정된 빌헬름 4세의 맥주 순수령을 통해 맥주의 원료를 오직 보리, 홉, 물로만 제한하며 엄격한 품질 관리를 도모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미생물학이나 효모의 존재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 훨씬 전의 시대였다. 여름철 창궐하는 야생 미생물과 고온 환경이 결합하여 발생하는 맥주의 부패 현상을 중세의 기술력으로는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바이에른 당국은 강제적인 하절기 휴업이라는 극단적인 법적 규제를 도입함으로써 품질이 저하된 맥주의 유통을 원천 차단하고 소비자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러한 통제는 계절별 맥주 판매 가격의 차등적인 상한선 설정으로까지 이어지며 맥주 품질의 표준화를 정착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언제부터 맥주를 차갑게 마셨나?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맥주를 얼음처럼 차갑게 즐기기 시작했을까. 인류가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실질적으로 가정용 및 산업용 냉장고가 보편화된 시기는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즉, 그 전까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소비해 온 맥주는 기본적으로 상온의 미지근한 상태였다. 여름철에도 냉각 설비 없이 실온에서 보관된 맥주를 그대로 마실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


오늘날에도 유럽의 유서 깊은 펍을 방문했을 때 제공되는 맥주가 한국 소비자의 기준만큼 차갑지 않아 당황할 때가 있다. 이는 냉장 시설의 관리 부실이 아니라, 미지근한 온도를 통해 맥아의 묵직한 고소함과 효모가 빚어내는 복합적인 풍미를 온전히 음미하던 전통적 음용 문화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얼어붙을 듯 차가운 맥주'의 유행은 20세기 초 미국을 뒤흔든 거대한 법적 통제, 즉 '금주법'이라는 기묘한 역사적 변곡점에서 탄생했다. 1920년 미국 전역에 발효된 금주법의 이면에는 복잡한 정치적·민족적 갈등이 얽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미국 양조 산업을 장악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세력은 대부분 독일계 이민자들이었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제국과 전면전을 벌이게 되자, 미국 슬롯 내에서는 독일계 자본이 적국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스파이 활동의 온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강한 불신과 질투가 피어올랐다. 결과적으로 금주법은 독일의 상징과도 같은 맥주 산업의 숨통을 조이고 독일계 미국인 슬롯를 압박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카드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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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술을 법으로 금지하자 공급은 음지로 숨어들었고, 이 틈을 타 불법 주류 유통망을 장악한 조직범죄 집단, 즉 마피아가 전면에 등장했다. 시카고의 전설적인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를 필두로 한 조직들은 폐업하거나 방치된 양조장들을 폭력으로 점거한 뒤, 전문 양조사들을 포섭하여 지하에서 맥주를 대량으로 밀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불법 맥주를 구매하지 않는 술집에 폭탄 테러를 감행까지도 하며 시장을 독점해 나갔다. 단속을 피해야 했던 술집들은 간판을 내리고 지하실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으며, 이로 인해 속삭이며 출입한다는 뜻의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 혹은 '히든 바' 문화가 정착되었다.


바로 이 지하의 밀조 시설과 비밀 바에서 맥주를 시원하게 팔아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발생했다. 금주법으로 인해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해진 대형 양조장들은 생존을 위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거대한 냉동 설비와 얼음 창고를 활용해 대규모 '얼음 제조 및 배달 사업'으로 업종을 전환한 상태였다.


비밀 바의 업주들은 매일 아침 공급되는 거대한 얼음 블록을 구매하여 지하실 아이스박스에 맥주 통(케그)을 넣고 채워 넣었다. 비위생적인 지하 시설에서 급하게 빚어진 밀조 맥주는 품질이 조악하여 특유의 불쾌한 잡미와 이상취가 심했는데, 이를 차갑게 얼림으로써 향과 맛을 물리적으로 마비시켜 숨겨야 했던 목적도 컸다. 체포의 위험 속에서 은밀하게 마시는 차가운 맥주의 짜릿함은 그렇게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드래프트 비어의 번역이 생맥주?

이처럼 서구의 역사적 격변을 거치며 정착된 차가운 맥주 문화는 근대 아시아, 특히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또 한 번의 시각적·문화적 변칙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생맥주'라는 단어는 영어의 '드래프트 비어(Draft Beer)'를 일본에서 번역하여 정착시킨 용어다.


images.jfif드래프트 비어의 번역은 생맥주가 아닌 통맥주다. 일본이 생으로 번역하면서 더욱 차갑게 마시는 문화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어원적으로 드래프트(Draft)는 '날것(Raw)'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커다란 통(Keg)에서 끌어내어 잔에 따르는 맥주'를 뜻하는 '통맥주'에 불과하다. 과거 살균 처리를 하지 않아 효모가 살아 있는 맥주를 뜻하던 개념이 유통 과정의 편의성과 마케팅적 수사 결합을 통해 '생(生)'이라는 단어로 치환된 것이다. 신선함과 생동감,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지 않은 이미지를 배격하는 '생'이라는 매혹적인 단어는 대중에게 맥주는 무조건 차갑고 청량해야 한다는 인식을 완벽하게 각인시켰고, 이로써 현대식 살얼음 맥주 신화가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마시는 한여름의 짜릿하고 시원한 맥주는 맥주 본연의 고정된 본질이라기보다는, 유럽의 기후적 한계와 바이에른의 엄격한 법령, 미국의 금주법과 마피아의 생존 전략, 그리고 아시아의 언어적 번역이 정교하게 엮여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하고 변모해 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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