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와 코냑은 왜 관세 전쟁의 희생양이 되는가

위스키 가격, 오를까? 내릴까?

by명욱
위스키는 왜 관세 전쟁의 희생양이 되는가

지난 4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스카치 위스키 관세를 철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나흘간 미국을 국빈 방문하고 귀국길에 오른 찰스 3세에게 건넨 뜻밖의 선물이었다. 위스키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귀가 번쩍 뜨일 소식이지만, 스카치 위스키와 미국 관세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가 있다. 왜 하필 위스키인가, 그리고 이게 실제로 내 위스키 가격에 영향을 줄까.

스카치 위스키와 미국 관세, 100년의 악연

1920년 금주법으로 미국 땅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된 스카치는 밀주 루트를 통해 오히려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혔다. 알 카포네로 대표되는 밀주업자들은 희소성을 철저히 관리했고, 1933년 금주법 폐지 후 스카치는 이전보다 강한 브랜드 파워를 갖추고 미국 시장에 돌아왔다. 1930년대 후반 미국은 스카치 위스키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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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도 빼놓을 수 없다. 대공황 속에서 미국이 단행한 초강력 보호무역 조치에 각국이 맞보복 관세로 대응하면서 대공황과 보호무역의 악순환 속에 세계 교역 규모는 60% 이상 감소했다. 경제학자들이 현재 트럼프 관세를 "스무트-홀리 이후 100년 만의 최고 수준"이라고 경고하는 것은 이 역사적 선례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은 유럽 전선에서 스카치를 접했고, 전후 귀환한 그들에게 스카치는 생존과 승리의 기억이 담긴 술로 각인됐다.


21세기 들어서는 보잉-에어버스 분쟁이 스카치를 다시 전쟁터로 끌어들였다. 2019년 WTO가 미국 손을 들어주자 트럼프 1기는 스카치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트럼프 2기 들어 미국이 영국산 제품 전반에 10% 기본 관세를 적용하면서 스카치도 직격탄을 맞았다. 스카치 위스키 협회에 따르면 2024년 스카치 수출액은 54억 파운드(약 10조 원)로 스코틀랜드 전체 식음료 수출의 77%를 차지하며, 영국 경제에 연간 71억 파운드(약 13조 원)의 부가가치를 만들고 6만 6,000개의 일자리를 지탱한다. 2025년 관세 부과 이후 약 10개월 동안 미국 수출이 약 15% 감소했고, 업계는 주당 400만 파운드의 손실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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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위스키와 코냑인가

무역전쟁에서 위스키를 비롯한 각국의 대표 지역 술이 반복적으로 표적이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켄터키 버번 위스키, 스코틀랜드 스카치 위스키, 프랑스 코냑은 모두 특정 지역 경제와 문화적 정체성이 깊이 결합된 상징재다. 이런 술에 관세를 때리면 해당 지역 정치인들에게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무역 협상의 레버리지로 이보다 효과적인 카드를 찾기 어렵다.


EU 집행위원장 융커는 2018년 트럼프의 철강 관세에 맞서 "할리 데이비슨, 리바이스 청바지, 버번 위스키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비행기와 무관한 스카치가 25% 관세를 맞은 이유도 같다. 스카치는 영국의 정치적 급소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코냑(와인을 증류한 코냑 지방의 증류주)은 더 극적인 사례다. 코냑은 생산량의 97% 이상을 해외 시장에 수출하며, 프랑스 코냑 지역의 7만 2,500명이 이 산업으로 생계를 잇는다. 2024년 코냑 수출액은 약 30억 유로(약 4조 5,000억 원)였다.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전기차와 무관한 프랑스 코냑에 최대 39%의 보복 관세를 때렸다. 코냑 업계 노동자들과 생산자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중국 수출은 24% 폭락했다. 코냑의 주요 시장인 중국과 미국 두 곳에서 동시에 타격을 받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스카치와 버번 위스키의 공생 관계도 흥미롭다. 스카치는 미국 버번 위스키를 담았던 중고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버번 위스키는 미국 법상 반드시 새 오크통에서만 숙성해야 하기에 한 번 쓴 오크통은 처분해야 하고, 스코틀랜드 증류소들이 이를 사들인다. 보잉과 에어버스가 싸우면 스카치와 버번 위스키가 함께 다치는 이유다.

그래서 내 위스키 가격이 싸지나


트럼프의 발언은 여전히 의사 표명 수준이고 실제 관세 철폐까지는 행정 절차가 남아 있다. 미·영 간 관세가 풀린다 해도 한국 수입가에 즉각 반영되지 않는다. 수입사 계약, 재고, 환율 등 여러 변수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위스키 시장은 코로나 이후 수요 급감과 재고 과잉이라는 구조적 문제도 안고 있다. 켄터키주에만 위스키 재고가 1,610만 배럴에 달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금은 위스키 입문자에게 오히려 기회다. 미국 수출이 막히면서 재고를 소화해야 하는 업계 입장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시장에서 가격을 낮추거나 프로모션을 강화할 유인이 생긴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 일부 스카치 제품의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거나 할인 행사가 늘어나는 것도 이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관세 전쟁이 만든 반사이익이다.


스카치 위스키는 금주법, 대공황, 세계대전, 무역분쟁을 거치며 미국 정치의 파고를 반복적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매번 결국 살아남았다. 이번 트럼프의 관세 철폐 선언이 또 하나의 반전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변수의 시작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PS: 해당 글은 신간 <왕과 술의 세계사>에서 최종적으로 넣지 않은 글입니다. <왕과 술의 세계사>가 궁금하신 분은 6월 18일 목요일 2호선 문래역 생각공장에서 북콘서트를 진행하니 편하게 놀러오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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