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이마 반

내가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by수키

‘절대로 떠나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일수록 우리 곁을 떠나기 마련이에요.’

세실리아 루이즈의 그림바카라 《피오렐로 씨의 헤어스타일》을 보면서 내가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오랫동안 이마를 가려온 앞머리였다.


아이의 생일이 되면 가족사진을 찍는다. 올해로 열한 번째 사진을 찍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바로 내 앞머리. 내 앞머리는 그 이름에 딱 맞게 언제나 ‘앞’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기 전에 거울 앞에 서서 내 앞머리가 가지런히 모아져 있는지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는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만히 카메라 렌즈를 바라본다. 촬영을 마치면 인화할 사진을 고르는데, 그때도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앞머리다. 거울 앞에서 공들인 시간이 무색하게 사진 속 내 앞머리는 늘 갈라져 있다. 작은 틈새로 보이는 이마가 얄밉다.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앞머리에 집착했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의 심부름으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슈퍼에 갈 때도 머리부터 감았다. 언제 어디에서 마주칠지 모르는 친구들에게도, 그저 스쳐 지나갈 낯선 사람들에게도 훌러덩 시원하게 까진 이마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넓어도 너무 넓은 내 이마는 옆으로 넓은 아빠의 이마와 위로 넓은 엄마의 이마를 사이좋게 다 닮았다.

이마가 넓으면 미인이다, 나중에 크면 부자가 된다더라 등의 말들도 있지만 친구들은 공짜를 좋아해서 이마가 넓은 거라고 놀리곤 했다. 학창 시절 단골 별명은 이마 반 혹은 당시 유행하던 홍콩 영화의 주인공 황비홍이었다. 간혹 이마가 좁은 친구들은 내 이마를 부러워했다. 쉬는 시간에 이마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의 이마와 비교하면서 손가락 다섯 개로도 다 가려지지 않는 내 이마의 넓이에 놀라곤 했다. 놀리려는 뜻은 아니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어색하게 웃어넘겼지만, 내 이마가 부끄러웠다. 나는 최대한 옆머리를 끌어와 커튼처럼 어정쩡하게 이마를 가리고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진 보정을 배웠다. 그때부터는 사진에 이마가 드러나면 포토샵 도장툴로 앞머리를 채워 넣었다.


세 명의 다른 자매도 모두 이마가 넓지만 이렇게 앞머리에 집착을 하는 건 나뿐이다. 언니나 동생들은 이마를 잘 드러내고 다녔다. 넓은 이마를 탓하면서도 애써 그것을 감추려 하지 않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선뜻 이마를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내게도 넓은 이마가 고마웠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에 샤기커트과 함께 풀뱅 스타일의 앞머리가 유행한 적이 있다. 넓은 이마 덕에 앞머리를 한껏 내려 이마를 가려도 얼굴이 짧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길쭉해 보였던 얼굴이 동그랗게 보이면서 귀여워 보이기까지 해서 스스로도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덕분에 이마를 자연스럽게 감추며 20대를 보낼 수 있었다.

30대가 되어서는 쇼트커트 스타일로 바꿨다. 무겁게 내린 앞머리와 짧게 친 뒷머리로 이어진 헤어라인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샤기컷을 했을 때보다 더 많은 앞머리를 이마로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다 또다시 유행이 바뀌었다. 언제부턴가 이마가 살짝 비치는 시스루뱅이나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는 사이드뱅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풀뱅을 고집할 수 없었다. 미용실에 커트를 하러 갈 때면 앞머리를 최대한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미용사는 그렇게 하면 답답해 보인다며 이마가 드러나게 앞머리를 다듬곤 했다. 전문가 앞에서 내 의견을 끝까지 고집하지 못한 나는 적당히 마음에 드는 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서 앞머리를 다시 정리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점점 미용실과 멀어졌고, 그 사이 내 머리카락도 점점 길어졌다.

현재 내 헤어스타일은 긴 머리다. 쇼트커트일 때는 3주에 한 번 미용실에 가야 했는데, 이제는 세 달에 한 번 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 편안함에 익숙해져서 어느새 머리카락이 날개뼈 아래까지 자랐다. 머리카락이 길어질수록 이마까지 내려오는 앞머리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마음먹고 앞머리를 길러보자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앞머리가 눈썹을 덮을 때면 결국 내 손에는 가위가 쥐어져 있다. 그런 내 모습에서 풍성한 자신의 머리카락에 집착하던 피오렐로 씨가 겹쳐 보였다.

피오렐로 씨는 세 가닥의 머리카락과 싸우기를 포기하고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 가닥의 머리카락이 차례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그의 정수리에 남아 준 세 가닥의 머리카락이 떠나버리는 장면에서 나는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을 느꼈다. 세 가닥의 머리카락이 그대로 남아 있어도 그가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내 이마는 피오렐로 씨의 머리카락처럼 사라질 수 없으니까.


액자에 있던 가족사진을 꺼내 한 장 한 장 앨범에 넣어 정리했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눈에 거슬렸던 앞머리의 흐트러짐이 이제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내 앞머리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걸까.

자전거를 타고 바카라방을 오가는 요즘, 바람결에 앞머리가 자유롭게 휘날릴 때면 훤히 드러난 이마에 닿는 바람이 시원하다. 그러다가도 신호에 걸려 멈춰 설 때면 나도 모르게 손으로 이마가 보이지 않게 앞머리를 가지런히 정돈한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여전히 이마를 챙기는 나를 보면 풋, 웃음이 난다.






+ 이야기 나눈 그림바카라

피오렐로 씨의 헤어스타일 (원제: Mr. Fiorello's Head)

세실리아 루이즈 지음, 김지은 옮김 미래엔아이세움(2024)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