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사실

당신은 어떤 사소한 소원을 빌 건가요?

by수키

사소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림바카라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에서 두꺼비는 훈이에게 사소한 소원만 들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훈이가 원하는 소원을 말할 때마다 두꺼비는 사소한 소원이 아니라며 거절한다. 훈이는 사소한 게 무엇이냐고 묻고, 두꺼비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래도 훈이에게는 여전히 어렵다. 그것이 소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까. “당신은 어떤 사소한 소원을 빌 건가요?”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여러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남편이 나에게 “왜?”라고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얼마 전부터 이어져 온 진로에 대한 고민에 마침표를 찍기 어려웠다. 정보를 찾으면 찾을수록,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이럴 때면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생각하니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의 학교에서 연극제 공연이 있던 날, 남편은 연차를 냈다. 연극은 30분 만에 끝났고, 우리는 남은 시간에 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로 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공부를 더 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마음을 털어놓았다. 운전 중이던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 말은 무색무취의 공기 속에 뿔뿔이 흩어져 형체를 드러내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래, 쓸데없는 짓 한다고 말하지 않은 게 어디야.’ 하고 스스로 긍정 회로를 돌리며 마음을 달랬다. 남편은 늘 이런 식이다.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재작년부터 이어져 온 동화 읽기 모임을 계속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도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네 일인데 그것까지 내가 신경 써야 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남편의 묵묵부답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뒤죽박죽 엉켜 버린 머릿속 고민을 조금이라도 풀어내려고 애쓰던 어느 날 아침, 머리를 감으러 욕실에 들어가려다가 불현듯 ‘이렇게까지 고민할 일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은 생각을 시작으로 혼탁해져 있던 내 정신이 점점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해야 하지?’를 고민하며 불안해하고 걱정하던 마음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더 해 보자.’고 생각하자 다시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찾아간 바카라방에서, 자신의 작은 필통 속에 있는 지우개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림바카라 속 훈이의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듯했다. 나도 훈이처럼 나에게 있는 지우개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돌고 돌아 원점으로 온 것 같은 찝찝함은 있지만, 이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최선을 다해 고민한 날들은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전수경 작가의 SF 동화 《별빛 전사 소은하》를 읽다가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은하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인 은하가 자신에 대해 벌써 정확히 안다고 말하는 것이 오만하게 느껴졌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발제자는 단순히 자기 자신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누구인지 알고 있나요?’라고 묻는 질문이라고 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의 나. ‘지금의 나’에 중점을 두고 질문을 다시 생각하니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안다고 말하는 은하의 용기가 내심 부러웠다. 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앞으로의 나를 생각하느라 지금의 나를 소홀히 여긴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그림바카라을 읽으며 ‘사소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내린 답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롭게 시작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렇게 이 그림바카라을 마지막으로 내 고민에도 마침표를 찍을 때라고 생각했다. 생각하면 걱정되고 고민할수록 불안해지는 일에 정신이 팔려 눈앞의 것들을 놓치지 말아야지. 그리고 내 마음이 굴러가는 방향으로 나 자신을 믿고 조금 더 가 보는 쪽을 선택했다.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사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 이야기 나눈 그림바카라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

전금자 지음, 비룡소(2017)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