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건너 이어지는 실존의 대화
시대를 건너 이어지는 실존의 대화
현실에서 당신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거나, 서로 다른 언어와 형식으로 각자의 세계를 마주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남긴 글을 읽을 때마다, 저는 문장 너머로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의 결을 가만히 더듬어 봅니다.
당신의 글에는 지혜와 철학, 학문과 현실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다져진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한 줄 한 줄에는 자신의 세계를 향해 묵묵히 걸어온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차가움과 따뜻함이 함께 깃들어 있으며, 자신의 세계를 빚는 일을 삶의 방식으로 살아낸 한 인간의 시간이 행간마다 내밀히 스며 있습니다. 그 문장을 만날 때마다, 저는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앞서기 위한 일이 아니라, 먼저 길을 걸어간 이들과 시대를 건너 대화를 이어 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침묵을 견디는 외로운 태도이며, 먼저 길을 걸어간 이가 남겨 둔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자신의 길을 조금씩 다져 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당신이 보여준 세계는 제게 단순한 정답이 아니라, 다시 붓을 쥐고 걸어갈 용기였습니다. 한 사람이 본디 자신의 사유를 하나의 세계로 펼쳐낼 수 있다는 그 엄연한 사실은, 방황하며 멈춰 서 있던 저의 사유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저는 여전히 삶을 두드리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길을 잃고 멈추고, 때로는 멀리 돌아가며, 때로는 끝내 닿지 못한 채 발걸음을 거두기도 합니다. 비록 삶을 다 살아냈다고도, 저만의 세계를 완성했다고도 말할 수는 없지만, 제게 찾아온 수많은 앓음과 흔들림을 의미 없이 흘려보낸 적은 없습니다. 고독과 고뇌 속에서 길어 올린 이 울림들이 언젠가는 저만의 형식과 언어가 되어 하나의 세계를 이루리라는 믿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의는 비교도, 시샘도, 막연한 동경도 아닙니다.
한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끝내 문장으로 남겨 주었기에, 결연히 펜을 들 수 있게 된 데 대한 깊은 감사입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삶의 방식으로 살아낸 사실이 또 다른 인간의 사유를 일으킨 데 대한 경의입니다.
당신의 글은 제 안의 간절함을 다시 흔들어 깨워 주었습니다.
먼저 걸어가 길을 열어 준 당신의 문장 앞에, 한 사람의 독자이자 같은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한 작업자로서 깊은 경의를 전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남긴 문장들은 제게 지치지 않는 사유의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그 위대한 사유의 서가 아래에서, 저 또한 한 작업자로서 당신이 열어 둔 침잠의 길을 담대하게 이어 걷겠습니다.
당신의 뒷모습 너머로 향한 시선을 펼치며.
한 사람의 사유는 한 권의 바카라이 되고,
한 권의 바카라은 한 사람의 세계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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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영화 《일 포스티노》 중
https://youtu.be/sWD4zIWu8TY?si=RwEP7HzyeG3Ria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