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떠난 후 남는 것에 대하여 °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의 여운을 붙잡으며

by김은령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


| 영화의 배경과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간의 집 마루 밑에는 작은 소인 가족이 숨어 산다. 이들은 인간의 물건을 조금씩 ‘빌려’ 살아가지만, 존재가 발각되는 순간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 소녀 아리에티는 뜻밖의 마주침으로 심장병을 앓는 소년 쇼우를 만나고, 소인 스피라와 마주하면서 자신과 같은 존재가 세상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비로소 확인한다.





° 사랑, 떠난 후 남는 것에 대하여 °


| 메타포를 건너며



소년 쇼우가 아리에티에게 건넨 것은 ‘각설탕’이다. 인간의 집에서 필요한 것을 빌려 살아가는 소인에게 각설탕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한 세계의 것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며, 인간과 소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공존의 상징이다. 발각되는 순간 떠나야 하는 불안한 삶 속에서, 하얀 각설탕은 생존 너머를 향유하게 만드는 흰빛의 ‘달콤한 눈꺼풀’이다. 차 한 잔의 단맛처럼, 그것은 잠시 허락된 평화다. 마루 밑 어둠에 몸을 숨겨온 아리에티에게 그 흰빛은 바깥세계를 향한 틈이 되고, 죽음의 어둠에 기울어 있던 쇼우에게는 아리에티가 삶을 향한 빛이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접점에 소인 스피라가 있다. 투박하고 문명과 거리가 먼, ‘빌려’ 살아가지 않는 그는 아리에티를 무심한 듯 지켜보다가 자신이 살아온 방식 그대로 마음을 내민다. 바로 ‘곤충의 뒷다리’다. 쇼우의 각설탕이 인간의 세계에서 가져온 달콤함이라면, 스피라가 건넨 곤충의 뒷다리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구한 생의 양식이다. 그는 특별한 것을 골라 건네기보다 가장 원초적인 것을 나눈다. 그것이 스피라가 아리에티에게 보여준 가장 자기다운 모습이다.


한 남자는 자신이 누리던 문명의 달콤함을, 다른 남자는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양식을 건넨다. 하나는 생존 너머를 향하고, 하나는 생존의 한가운데를 향한다. 두 사람이 아리에티에게 건넨 것은 각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서로 다른 메타포이다.


그러나 존재가 발각되면서 마루 밑의 삶은 무너진다.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나는 아리에티에게 쇼우는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달려와 각설탕을 내밀며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아리에티 덕분에 살아갈 용기가 생겼어. 힘낼게. 넌 나의 심장의 일부분 같은 존재야. 잊지 않을게, 영원히.”



생과 죽음의 경계에 선 쇼우에게 아리에티는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 존재였다. ‘심장의 일부분’이라는 말에는 자신이 다시 붙잡은 생의 한 조각마저 그녀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 마음에 화답하듯 아리에티도 모험을 떠나기 전 머리에 꽂고 있던 빨간 빨래집게를 쇼우에게 건넨다. 각설탕은 아리에티에게 스며들고, 집게는 쇼우의 삶에 하나의 무늬가 된다.


그러나 세 마음은 같은 곳에 도착하지 않는다. 아리에티는 쇼우의 마음을 품을 수 있지만 함께 살아갈 수는 없다. 반면 스피라와는 같은 소인으로서 서로 의지하며 삶을 나눌 수 있지만, 감정의 행방은 아직 알 수 없다. 이 사랑의 미완이 이상하게 나를 붙든다.


나는 사랑하면 마음을 돌려받아야 하고, 서로 사랑한다면 예기치 않은 이별 전까지는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쇼우와 스피라, 그리고 아리에티를 바라보며 내가 사랑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생각한다.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도,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호감도, 자신의 생을 당당히 살아내는 일도 사랑의 한 얼굴일 수 있다. 서로가 어디에 있든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서로에게 살아갈 힘이 될 수 있으므로.


그 한가운데에는 올곧고 강인한 아리에티가 있다. 두 사람이 건넨 상징으로 단장한 그녀는 가족과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또 다른 소인들을 향해 떠난다. 마루 밑을 벗어난 그녀의 앞에는 넓은 하늘이 펼쳐진다. 쇼우는 죽음에 기울었던 자리에서 삶을 향하고, 아리에티는 익숙한 어둠을 벗어나 미지의 하늘 아래로 스피라와 함께 나아간다. 서로의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마주할 여정을 곧은 시선으로 지켜보고 싶다.





(떠나는 아리에티를 상상의 공간에 담았습니다. 영화의 실제 장면이 아닌, 작품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미지입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에 대한 여운을 붙잡으며,


쇼우는 ‘스며드는 것’을 건넸고,
아리에티는 ‘붙드는 것’을 두고 떠난다.


그 마지막에 놓인 쇼우의 전하지 못한 마음을 그려본다.


나를 바라봐 주었으면 해.
내 곁에 있었으면 해.

하지만 너에게는 네가 살아야 할 세계가 있어.
내가 너를 인형의 집에 가둬두면
너는 흰빛을 잃을 거야.

안녕,
나의 안 아픈 심장.

나는 네가 없는 하늘 아래에서
너의 빨간 집게와
빈 조각 마음으로 살아갈게.

너는 너의 하늘 아래에서
새로운 집게를 꽂고
네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래.

안녕,
나의 하얀 기적.



쇼우의 마음에
온라인카지노 레옹 작가님의 노래를 함께 놓습니다.
(작사·작곡 | 레옹)


https://youtu.be/Wyk-hmEJ4Qo?si=RXqcgl-n29oSpd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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