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상흔 : 자기 뒤의 삶, 자기 앞의 삶

존재의 균열이 투사된 도시

by김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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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기억으로 넘쳐흐르는 이러한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합니다. 도시의 현재 모습을 묘사할 때는 과거를 모두 포함해야 합니다. 그러나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금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긁히고 부딪힌 흔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중




《 도시, 그 사이 》 _ 그림부리 김은령





도시의 상흔

: 자기 뒤의 삶, 자기 앞의 삶


존재의 균열이 투사된 도시


벗겨진 시간의 껍질들이 흩날리는 도시.

도시는 기억의 파도에 스펀지처럼 젖어들고,
시간의 층들은 서로 뒤엉킨 채 부풀어 오른다.

기억의 도시에서는 현재의 시간이 처음의 시간과 이어지며,
삶은 끝없이 안과 겉을 변주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도시는
죽은 자들을 위한 장엄한 비석처럼 서 있다.

거리의 모퉁이마다 긁힌 시간들이 남아 있고,
난간과 창살에는 지나간 삶의 체온이 희미하게 붙어 있다.

도시는 말을 하지 않지만,
모든 표면은 기억으로 마모되어 있다.




저 멀리 어느 도시,
한 거리에서 여자가 걷고 있다.
너무 낯설음에 지친, 흔들리는 뒷모습.

그녀는 도시, 그 사이에서
왜 그토록 방황하고 있었을까.

조각난 달처럼 흩어지고,
길 잃은 태양처럼 부유한다.

거리들은 그녀가 아닌 그녀를 비추며
점점 그녀를 밀어낸다.

희미해진 기억,
엉킨 시간들을 끌어안은 채
그녀는 표면으로 밀려나 있다.

그리고 순간,
거리가 그녀를 대신 말하기 시작한다.

도시는 제2의 그녀를 투사하는 거대한 거울이 된다.
그 거리들은 점점 얇은 종이가 되어
미완의 바카라으로 흩어진다.

무게를 잃은 상흔으로 남는 페이지들.

그녀는 분리된 파편들로
하나의 존재를 붙들고 있다.

아니면,
그 모든 풍경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속의 기억이었을까.

낯선 거리를 다시 찾아가면
그곳에서 또 다른 그녀를 마주칠 것만 같아 두렵다.

자기 뒤의 삶,
자기 앞의 삶.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그녀는 오늘도 계속 걷고 있다.

그러다 고집스러운 불안에 휩쓸려
빛이 머무는 희미한 카페 안으로 들어선다.

혼자임을 잊고,
시간을 견디며,
살아갈 이유를 이어 붙이기 위해.
분명 지금, 여기에 닿기를 바라면서.

사랑의 빛은 아직 도착하지 않는다.

카페의 창에는
빛바랜 하늘이 무늬에 따라 흔들리고,
그녀는 죽음이라는 경계를 품은 채
오늘의 시간을 천천히 건너간다.

두렵고,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음에
알알한 안도를 느낀다.

지금, 여기.
이 도시 사이에서
감사함이 발끝에 저린다.




《 도시, 그 사이 》 _ 그림부리 김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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