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진창 속에서도 이미 꽃은 피어 있다.
세상은 ‘악의 꽃’을 장미로 떠올리곤 한다.
붉고, 번지고, 가까이 갈수록 상처를 남기는 것.
그러나 어떤 고통은 가시를 갖지 않는다.
그래서 그 고통은
장미가 아닌 다른 형태를 남긴다.
나의 ‘악의 꽃’은 동양란이다.
눌린 선, 접힌 곡선,
멀리 퍼지지 않는 향.
그 향은
도달하기 전에 먼저 가라앉는다.
꽃잎은 얇다.
바카라장을 넘기듯
쉽게 떨리고,
쉽게 베인다.
그 위에는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이 남아 있다.
번지지 않고,
스며든 채로.
어떤 감정은
울음보다 먼저
와 있다.
여백이 깊어진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서로를 밀어내며
자리를 만든다.
나는 베인 결을 덮지 않는다.
덮으면
더 깊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를 더 얹는다.
결 위에 결을,
상처 위에 또 다른 얇은 막을.
그대로 둔다.
끝내
형태는 스스로 무너진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다시 자라난다.
꽃은 그렇게
피었다가 스러지지만,
다른 얼굴로
다시 돋아난다.
낯익음으로.
이미
스며 있던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