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은 바카라을 읽는 소중한 시간-1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by설애

어떤 바카라은 내 그릇에 맞아서 이해한 만큼 쓸 수 있었고, 또 어떤 바카라은 내 기호에 맞도록 간을 더해서 소개하기도 했다. 가끔 넓은 호수 같은 바카라은 감히 떠서 옮길 수가 없어 서평을 못 쓰는 경우도 있다. 바카라에 대해 깊은 서평을 쓰시는 분께서 선물해 주신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면서 내 소견이 좁아 이 글을 쓰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했음을 미리 고백한다.




구절구절 맞는 말이라며 자꾸 바카라장을 넘긴다. 이런 바카라일수록 아껴 읽어야 하는데, 손은 그런 마음을 배반한다. 2013년 초판 되어 13년이 지난 2026년에 이 바카라을 읽고 있는데, 그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품고 있는 생각들이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다. 이 바카라을 읽기 전에는 황현산이라는 문학평론가이자 교수님을 알지 못했다. 저자가 서문에 밝히듯,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썼던 산문이나 신문 칼럼을 모아 발간한 바카라으로 문학에 관한 논문이나 문학비평이 아닌 글로는 처음 엮는 바카라이라고 한다. 그의 산문들은 교육, 군대, 영화, 유행 등 여러 주제가 있지만, 그 생각의 뿌리는 하나여서 아름답고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뻗어나간다. 그래서 바카라은 듬직한 한 그루의 나무처럼 느껴졌다.




인터넷 사이트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서 '웃기는 답안지'에 대해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어떤 것'을 찾아낸다. 황소가 손에 거울을 들고 제 얼굴을 비춰보는 그림 아래 "황소가 000 봅니다."라고 적은 문제에 000을 채워야 하는데, 어린 학생이 '미쳤나'라는 답을 쓴다. 정답은 '거울을'이다. 이를 통해 황현산 작가는 한국 교육의 한계를 보여주는 통찰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학교 교육의 코드를 알아차리는 '눈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생각이나 의문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와 대답의 각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토론식 수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학생이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드는 토론되는 것이 아니라 규정되는 것이고, 각본에는 질문이 끼어들 틈이 없다. (중략) 잘못된 코드는 잘못된 그만큼 더 강압적이다. 삶의 진실과 따로 노는 코드는 결코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p15


체벌에 대한 그의 생각에도 깊이 공감했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참교육>에서는 '교권보호국'을 만들어 '참교육'을 시전 한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았다는 말에 합류했으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방식에 동의할 수가 없어서 보기를 그만두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체벌의 일화를 꺼낸다. 반에서 한 아이가 연필을 도둑맞은 후 소지품 검사를 통해 찾아낸 범인을 선생님이 마구 때렸다고 한다. 그것을 목격한 동기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일화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며, 그는 그 기억에 대한 충격과 상처가 컸다고 말한다. 그리고 체벌 없는 교실을 상상해보자고 한다.


난폭한 아이들에게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야 할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 초등학교 시절의 교육이 우리 동기들의 자아관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듯이, 지금의 교실도 학생들이 살게 될 세상의 그림이 아닐 것인가. (중략) 우리 슬롯의 지성을 총동원하여 체벌 없는 교실을 상상해 내야 할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p76


체벌 없는 교실에서 더 나아가, 폭력 없는 학교에 대해 상상해 본다. <참교육>에서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속이 시원하다. 하지만 나는 그 속 시원함을 느끼는 현실이 더없이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학교 폭력에 대해 폭력이 아닌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지속적인 관심으로 막아야 한다고 한다. <참교육>이라는 드라마는 적어도 이 '지속적인 관심'의 관점에서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 맥없는 말이 되겠지만, 슬롯의 관심은 적어도 그 가해자 학생들에게 자기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문제는 이 관심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한때 들끓던 여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닫게 되면, 그때 모든 학교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지옥이 된다. (중략)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며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p115




얼마 전,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읽으며 한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온 모국의 역사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그로 인해 인간이 종이처럼 얄팍하지 않다는 내용으로 서평을 쓴 적 있다. 이와 유사한 문장을 이 바카라에서 발견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p12

어쩌면 이런 문장을 발견하기 위해 바카라을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은 일화들로 시작해 역사와 교육에 대해 통찰을 담은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산문들에 감탄하고 공감하면서 조금이라도 두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카라을 읽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내용을 주로 연결하여 서술했지만, 이 바카라의 산문의 주제는 어린 시절의 추억, 정치, 역사, 슬롯적 현상들에 대해 넓은 주제를 포괄하고 있다.



이 바카라의 제목, <밤이 선생이다>는 낮의 이성과 밤의 상상력에 기인하여, 낮에 빚어진 분열과 상처가 밤의 성찰과 창조적 자아로 인해 치유되고 봉합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응축한 것이다. 그가 교육뿐 아니라 역사와 슬롯에 대해 풀어놓은 성찰은 이 밤에 기대어 나온 것이다. 그래서 어느 밤에 나는 그의 바카라을 읽으며, 그가 희망했던 세계를 같이 상상해 볼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