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을 금지하면서 도박장을 허가하는 이유
초등학생 때 학교 앞 문방구에는 '짱껨뽀'라는 게임기가 있었습니다.
동전을 넣고 가위, 바위, 보 중 하나를 고릅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면 토큰이 랜덤하게 1개부터 20개까지 나왔는데, 이 토큰은 근처 문구점에서 한 개에 100원의 가치를 했습니다. 어렸을 적 저는 이 게임을 꽤 좋아했습니다. 물론 대체로 돈을 잃는 게임이었죠.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겼는데 신나서 계속하다 보면 결국 주머니가 비어 있었거든요. 그래도 다음 날 문방구 앞을 지나가다 주머니에 동전이 있으면 또 게임을 하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초등학교 앞에 조그만 카지노가 있었던 셈이니까요. 오늘날엔 상상할 수 없는 유해오락물이죠.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더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사설 도박장을 차리면 잡혀갑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도 잡혀갑니다. 그런데 어떤 카지노는 버젓이 간판을 달고 영업합니다. 내국인을 상대로 하는 카지노는 아예 공기업이고요,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카지노는 국가가 허가해 줍니다. 주식시장에 당당히 상장까지 되어있죠.
도박이 그렇게 문제라면 그냥 전부 금지하면 될 것 같은데, 세계 여러 나라는 카지노를 합법적으로 운영하도록 허용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는 왜 도박을 막으면서 한편으로는 카지노를 허용할까요?
카지노를 금지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도박에 지나치게 빠지면 큰돈을 잃을 수 있습니다. 중독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가계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슬롯적 비용도 생깁니다. 그래서 국가는 도박을 아무나 장사할 수 있는 평범한 산업으로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렇게 문제가 많은 산업이라면서 국가가 직접 허가를 내주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카지노 자체를 금지한 것도 아닙니다. 외국인이 이용할 수 있는 카지노는 여러 곳이 있습니다. 반면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는 예외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도박의 해악이 문제라면 외국인에게도 해로운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도덕에서 잠깐 눈을 떼고 돈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외국인 관광객 한 명이 한국에 와서 카지노에서 100만 원을 잃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100만 원의 손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외국에 있던 돈 100만 원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카지노의 매출이 되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과 기업의 이익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세금과 각종 기금도 발생합니다.
관광객이라면 카지노에서만 돈을 쓰지도 않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와서 호텔에서 자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쇼핑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카지노는 단순한 도박장이 아니라 관광객의 돈을 끌어오는 장치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른 관광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죠.
그런데 카지노에는 조금 독특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돈을 쓰는 사람과 그 소비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비용을 부담하는 나라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카지노에서 큰 돈을 잃고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파는 한국 슬롯에도 돌아옵니다. 가계가 어려워질 수도 있고, 치료나 복지가 필요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한국에서 돈을 쓰고 자기 나라로 돌아갑니다. 수입은 한국에 남았는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의 상당 부분은 그 사람이 사는 나라의 문제가 됩니다.
상당히 얄미운 계산이죠.
그래서 국가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카지노 고객을 아주 냉정하게 상상해 보면 이런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돈을 많이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우리나라 카지노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인 전용이라는 사실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외국인의 돈은 들어오게 하면서 자국민에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어느 정도 막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카지노를 전부 없애면 어떨까요? 도박으로 생기는 문제도 함께 사라진다면 가장 간단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도박하고 싶은 사행심리까지 법으로 없앨 수는 없습니다. 국내에 카지노가 없으면 해외 카지노를 찾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합법적인 도박을 막으면 불법 도박으로 옮겨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국가 입장에서는 이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국민이 해외 카지노에 가서 100만 원을 잃으면 돈은 해외로 빠져나갑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100만 원을 잃으면 세금도 제대로 걷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도박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여전히 국내에 남을 수 있습니다.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는데 돈은 남이 가져가는 셈입니다.
그래서 카지노를 둘러싼 국가의 선택은 생각보다 복잡해집니다.
'도박을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만 따지는 게 아닙니다.
어차피 어느 정도의 도박 수요가 존재한다면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갈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외국인의 돈은 가능하면 국내로 들어오게 하고 싶습니다.
반대로 자국민의 돈이 해외나 불법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막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도박 때문에 생기는 슬롯적 비용은 가능한 한 줄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풀어주지도, 완전히 막지도 않는 이상한 형태가 등장합니다.
카지노를 허가제로 묶고, 세금을 걷고, 장소를 제한하고, 어떤 곳에서는 출입할 수 있는 사람까지 구분합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국가도 나름대로 손익계산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 어린 시절의 짱껨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시의 저는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는 것만 중요했습니다. 이기면 신났고, 지면 억울했습니다. 몇 판을 더 하면 잃은 돈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방구 주인의 계산은 조금 달랐을 겁니다.
제가 한 판을 이기느냐 지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제가 계속 동전을 넣는 것이었겠지요.
국가가 카지노를 바라보는 시선도 어쩌면 조금 비슷합니다. 누가 잭팟을 터뜨릴지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누가 돈을 집어넣고, 그 돈이 어디에 남으며, 뒤처리는 누가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국가가 카지노를 허용한다는 사실이 꼭 도박에 관대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금지하는 것보다 허용하고 통제하는 편이 나은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동전은 우리 동네 아이보다 옆 동네 아이가 넣어주는 편이 좋습니다.
Scavette, A. (2022). Casinos and Regional Economies: Has the Game Changed? Federal Reserve Bank of Richmond, Economic Brief 22-28.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관광연구원, 『외국의 카지노 관련 법·제도 연구』
문화체육관광부, 『외국인전용카지노업 관련 제도 개선 계획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