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업들은 중독을 연구할까?

사람은 생각보다 합리적이다. 그래서 더 조종하기 쉽다.

기업이 가장 좋아하는 고객은 당장 돈을 많이 쓰는 고객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오늘 큰돈을 쓰고 다시는 오지 않는 사람보다, 당장은 적게 쓰더라도 내일이고 모레고 또 오는 사람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은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보지 않습니다. 왜 다시 돌아오는지, 왜 그만두려다가 한 번 더 하는지, 무엇을 잃기 싫어하는지도 살펴봅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 이상한 현상과 만나게 됩니다.

중독입니다.


물론 쇼핑몰이나 게임회사가 약물중독을 연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중독은 사람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그만두고 싶어도 다시 돌아가는 가장 강한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은 왜 다시 손을 뻗는지, 어떤 보상이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지, 왜 그만두려다가도 한 번 더 하게 되는지는 기업도 궁금해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중독된 사람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는 걸까요?




1. 기업은 합리적인 소비자를 싫어하지 않는다

어릴 때 저는 손에 비누칠을 하고도 물로 잘 씻어내지 않았습니다. 비누가 병균을 없애는 물건이라면 오래 묻혀두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손이 벌개지고 나서야 어머니께 혼이 나고 비누를 깨끗이 씻어내기 시작했죠.


지금 생각하면 엉터리였지만 당시의 저는 나름대로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생각을 안 한 게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었던 거죠.


자, 우리는 기업이 사람에게 돈을 쓰게 만든다고 하면 흔히 충동구매를 떠올립니다. 화려한 광고를 보여주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은 채 결제를 시키는 모습입니다. 물론 그런 방법도 있죠. 하지만 더 좋은 방법도 있습니다. 소비자가 스스로 계산한 끝에 돈을 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쇼핑몰에서 3만 원짜리 물건을 하나 산다고 해보겠습니다. 배송비는 3천 원입니다.

그런데 화면에 이런 문구가 뜹니다. 5만 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그 순간 새로운 계산이 시작됩니다. '배송비로 3천 원을 내느니 2만 원어치를 더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가만히 보면 이상합니다. 3천 원을 아끼려고 2만 원을 더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산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장바구니 금액을 맞춰가며 열심히 계산했습니다.


카페 스탬프도 비슷합니다. 처음 가는 카페 두 곳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커피 맛도 비슷하고 가격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한쪽 카페의 쿠폰에는 이미 도장이 9개 찍혀 있습니다. 한 잔만 더 사면 다음 커피가 무료입니다.


그러면 처음의 '오늘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까?'라는 질문이 '도장 하나만 더 찍으면 되는데 굳이 다른 카페에 갈까?'로 바뀝니다. 커피가 갑자기 더 맛있어진 것도 아니고 가격이 크게 싸진 것도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소비자가 풀고 있는 문제입니다.


사람은 계산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 만들어놓은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습니다.



2. 기업이 원하는 것은 '한 번 더'다

그래서 기업이 알고 싶은 것은 단순히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가'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한 번 더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입니다.


쇼핑앱은 알림을 보내고, SNS는 새로운 반응이 왔다고 알려주며, 카페는 스탬프를 찍어줍니다. 쇼핑몰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포인트를 주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물건이 필요해서 쇼핑앱을 열었는데 갑자기 '3천 포인트가 오늘 소멸됩니다.'라는 문구가 뜬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살 물건이 있나?'라는 질문이 '3천 원을 그냥 버릴까?'로 바뀝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앱을 연 것이 아니라, 없어질 포인트가 아까워서 살 물건을 찾기 시작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차이가 중요합니다.

고객이 한 번 만족하고 떠나는 것보다 다시 찾아오는 편이 훨씬 가치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기업의 관심과 중독 연구가 만납니다. 중독 연구 역시 어떤 보상이 행동을 강화하는지, 왜 어떤 욕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지, 왜 사람은 그만두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돌아오는지를 살펴봅니다.

기업이 원하는 것도 결국 비슷합니다. 한 번의 강한 만족보다 한 번 더 돌아오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최대한 붙잡으면 될까?

여기까지 보면 답은 간단해 보입니다. 사람이 계속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 최대한 강하게 붙잡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것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을 생각해보죠. 돈을 내고 뽑기를 하면 일정 확률로 원하는 아이템이 나오는 방식입니다. 운이 나쁘면 큰돈을 쓰고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유저 입장에서는 견디기 어렵습니다. 수십 번, 수백 번 뽑았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화가 나서 게임을 아예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흔히 이런 상황을 '폭사했다'고 표현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당장은 큰돈을 벌었더라도 유저가 떠나버리면 앞으로 얻을 수 있었던 매출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게임에는 '천장'이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0번까지 뽑았는데도 원하는 아이템이 나오지 않았다면, 100번째에는 반드시 그것을 주는 식입니다.


끝까지 확률에 맡기면 운이 나쁜 사람에게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은 포기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운이 나빠도 여기까지만 가면 얻는다'는 확신이 있으면 계속할 이유가 생깁니다.


게임사는 당장의 추가 매출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 유저가 아예 떠나버리는 것을 막습니다.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한 번의 결제액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앞으로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와 돈을 쓸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객을 무조건 세게 밀어붙이는 것이 좋은 전략은 아닙니다. 너무 약하면 행동하지 않고, 너무 강하면 지쳐서 떠납니다.


독하게 말하면 마약상조차 고객이 약물을 마구 남용하다 죽어버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죽은 고객은 다시 사러 오지 않으니까요.




사람은 생각보다 합리적이다

어릴 적 저는 비누를 손에 남겨두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판단은 틀렸지만 계산은 하고 있었습니다. 소비자도 늘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을 움직이는 데 꼭 판단력을 빼앗을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무엇을 판단하게 할지만 바꾸면 됩니다.


'이걸 살까?'라는 질문을 '2만 원만 더 사서 배송비를 아낄까?'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어느 카페에 갈까?'라는 질문은 '도장 하나만 더 찍으면 되는데 굳이 다른 곳에 갈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물건이 있나?'라는 질문도 '오늘 사라지는 3천 포인트를 그냥 버릴까?'로 바뀔 수 있습니다.


선택지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질문을 풀기 시작하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집니다.

사람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바꾸고 싶다면, 먼저 어떤 질문을 풀게 할지 바꾸면 됩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더 조종하기 쉽습니다.



참고문헌

Becker, G. S., & Murphy, K. M. (1988). A theory of rational addiction.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6(4), 675–700.

Berridge, K. C., & Robinson, T. E. (2016). Liking, wanting, and the incentive-sensitization theory of addiction. American Psychologist, 71(8), 670–679.

Nunes, J. C., & Drèze, X. (2006). The endowed progress effect: How artificial advancement increases effort.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32(4), 50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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