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Seal

2026. 5. 31.

by한상훈

얼굴을 보았다. 꽤 좋아졌었다. 제법 수장의 얼굴을 띄었다. 그러나 전혀 준비된 몸은 아니었다. 당연했다. 애초부터 몸을 쓰도록 설계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모든 창조물에는 창조자의 의도와 실체가 담긴다. 어설프게 그린 그림을 보면 그림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밝고 명랑한 그림체에는 기쁨의 감정이 담겨있고, 어둡고 거친 선들에는 또 다른 감정이 담겨있을 것이다. 창조자의 의도에 따라 완성된 것이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을까. 설계된 결함이자 창조자의 실력 부족이다. 스마트폰이 고장 났다고 해서 스마트폰이 스스로를 자바카라하는 것은 우습다.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사과를 할 일도 아니다. 스마트폰의 구조적 결함은 제조사가 바카라임을 져야 하듯 창조자는 창조물에 의도와 실력, 둘 다를 담는 법이다.


종종 인간은 스스로에게 창조자 없이 태어난 것 같은 마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창조자에게 기대고 있는 양가적 감정을 포함한다. 신이 나를 창조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태생부터 가져온 결함에 대해서는 창조자의 탓을 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탓으로 돌린다. 어떤 이들은 자연적인 성욕을 두고 죄악시하기도 한다. 성욕이 어떻게 존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항상성 유지에는 성 호르몬이 필연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그것이 성장을 만들어내는데. 1차원적으로 인간의 죄를 말하고, 신은 인간의 결함에 무고하다는 식의 이해는 인간을 추락시키는 동시에 신의 권위도 추락시키는 논리적 모순이 존재한다.


끝없는 지혜를 부어주어, 섬세한 모순들을 마치 까슬거린 옷감 속 가시를 찾아내듯 할 수 있도록. 거대한 지성을 받았음에도 그것이 인간의 기준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2 문단이 된다. 놀라운 일이다. 짧은 비유로도 수천 년의 종교들이 만들어 온 모순을 증명할 수 있어도 이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들, 이해했다고 하면서도 경탄하지 못하는 이들, 이것의 무게를 모르는 이들밖에 없다. 그들의 저울에는 신성이 없다. 그들의 저울엔 오직 생존과 쾌락. 더 많은 돈! 더 많은 섹스! 더 많은 힘! 더 많은 쾌락! 그것은 이들이 그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기보단 그들의 영이 아직 아이의 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와 어른이 동일하게 생각할 수는 없는 법. 아이들에겐 타인은 없고 오직 자신만 존재한다. 갓난아이가 어머니가 아파 몸져누워있으면 배가 고파도 가만히 울지 않고 있는가? 졸린데 잠을 못 자면 잠투정을 부리고, 먹을 것을 안 줘도 울고, 오직 울고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서 소리칠 뿐이다. 그것이 아이다. 아이가 아이인 것에는 잘못이 없다. 마찬가지로 아이와 같은 이들이 아이인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 정도 사람으로 이 생을 살도록 창조한 창조자의 설계인데, 아이에게 잘못을 묻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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