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2026. 5. 28.

by한상훈

흙을 만지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부모님들 눈에는 더러운 것을 만지는 것으로 보이고, 농부의 손에 만져지는 흙은 진단받고 확인받는 모습이며, 토기장이의 손에 만져진 흙은 예술로 거듭나는 중이다. 같은 흙이라 할지라도 누구의 손에 만져지고 있는지에 따라 흙은 찬란한 모습으로 바뀌기도 하고 더럽다는 비난을 들으며 탈탈 털려 버리는 신세에 처하기도 한다. 흙 자체는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없으나 아주 깊은 곳에서 뜨거움 속, 엄청난 압력을 받으면 다른 형태로 바뀌기도 한다. 어떤 흙은 화강암이 되고, 어떤 흙은 다이아몬드가 되며, 어떤 흙은 현무암이 되고, 어떤 흙은 사암이 되고. 보석이 되기도 하고, 돌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흙 속에 아주 오랜 시간 묻히고 난 후에 흙이 누군가의 손에 발견되고 다듬어지면 그때서부턴 세상을 누빌 수 있다. 누군가에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되기도 하며, 누군가의 식사를 담은 도기가 되기도 하고, 따뜻한 차를 담는 찻잔이 되기도 한다. 더러움인가. 아름다움인가. 비천함인가. 고귀함인가. 그것은 흙이 정할 수 없다. 그저 인간이 정한 뜻일 뿐이다.


인간은 어떠한가. 찬란히 빛나는 사람을 과거 특정 시점으로 보내버린다면, 그때도 그는 빛이 나는가? 현대 농구의 가장 큰 빛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클 조던을 200년쯤 과거로 보내고, 제대로 먹이지도 않고 키운다면 목화밭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 짧은 생을 마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그가 상대성 이론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 어떤 위대함도 빛날 수 있는 시대가 있고,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하며, 누군가가 그를 사용해주어야 한다. 마이클 조던에게 누군가는 공을 쥐어주었어야 했고, 아인슈타인에겐 종이와 팬을 허락해주었어야 했다. 인간의 운명은 많은 부분 자신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의 정말 많은 부분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과 환경에 지배당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프다. 이 모든 실패의 탓을 개인으로 돌리는 것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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