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길

2026. 5. 4.

by한상훈

나는 오랫동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그 고민은 돌이켜보면 20살이 갓 지났을 무렵 가장 컸던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고등학교 내내 건설 분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해수담수화 플랜트나 무너진 세상을 고치는 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이 끝나고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전과가 가능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대학교 공부와 대학의 삶은 너무도 힘들었다.


당시 나는 신이 내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술을 멀리했었다. 억지로 술을 마셨던 OT날을 무척이나 후회했고 친해진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학교에서 어울릴 친구도 없었다. 기독교 동아리를 찾아 이곳저곳 배회했던 것은 필연이었다. 그리고 성적이 나쁜 것도 필연이었다.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족보를 구할 방법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족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가르쳐준 친구도 선배도 없었다. 대학에선 교수의 말을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이 지나 퇴학을 하고 싶었던 것 역시 필연이었다. 성적은 바닥에,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술에 취해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어디든 어울리려면 술이 필요했다. 기독교 동아리에서 극 소수의 형들을 제외하곤 나를 반겨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돈은 없었고, 서울의 생활은 고달팠다. 돈이 없어서 옷을 사지도 못했는데 그러다 보니 간절기면 감기에 걸리곤 했다. 아르바이트를 안 한 건 아니다. 과외를 했었으나 과외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양대에서 멀리 떨어진 장지와 같은 곳까지 가야 했고 보수도 너무 적었다.


고등학교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별과 같았는데 이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이곳에선 내가 어떤 서사를 가졌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끼리끼리 뭉쳐 다녔다. 팀 과제를 해야 할 때면 친구가 없어 외로웠다. 나의 괴로움은 곧 신에 대한 분노로 얼룩지기도 했다. 점점 더 많은 가르침을 좇아다녔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런 일이 펼쳐져야 했던 것일까. 나도 남들처럼 술 마시고, 교회를 다니지 않고, 그 시간에 돈을 벌고, 옷을 사고, 연애를 하는 게 정답이었단 말일까?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가 얼룩졌다. 3년의 시간을 애썼던 곳이 고작 이런 곳에서 내가 배우고 싶지도 않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곳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음에 괴로웠다. 내 인생에 큰 역할을 했던 정기 선생님은 또 아이들을 보살펴 달라 부탁했기에 나는 군대를 가지도 않고 휴학을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고, 나의 얼마 안 되는 소중한 돈을 그들을 위해 다 써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결과적으로 모두 떠났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를 위해 이곳에 있었던 것일 뿐이다. 그들 안엔 거룩한 씨앗이 없었다.


이제와서는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다. 나는 그러한 필연의 상황들로 인해 대학을 온전히 버렸고, 그 이후에 최선을 다해 공부해서 개발을 시작했다.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 작은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어 성공하고 싶었다.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는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때서부터 내 삶이 시작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으니.


신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신이 바란 건 교회에 없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교회 밖에 있는 진정한 진리로 향하도록 나를 교회에서 밀어버린 셈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말이겠지. 하지만 그들은 말씀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먼 위선자들이기에 그들의 평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또한 나의 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길을 계획했다. 건설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은 무너진 곳을 다시 고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정한 길에는 갈 수 없는 길을 다른 길로 인도하셨다.


공교롭게도 나는 서른둘쯤 되어서야 어떻게 ODA 자금이 실제로 건설사들을 통해 움직이며 그것으로 파생되는 산업의 구조를 건설사 회장님들을 통해 직접 배울 수 있었다. 그뿐인가. 나의 모든 선택들은 필연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순간들로 이뤄져 있다. 필연. 그다음 필연. 계속된 필연과 같은 운명을 따라 결과적으로 이곳까지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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