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의 재활 목표는 '정상인 되기'였다.
다시 예전처럼 움직이고 싶었다.
그런데 뇌과학자의 뇌졸중 극복기를 담은 바카라을 읽다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정상'과 '일반적인 것'은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움직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렇게 목표를 조금 고쳐 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가 원하는 만큼 돌아오지는 않았다.
수없이 기적을 바랐고, 그만큼 많이 체념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남들이 하는 평범한 일상을 나도 할 수 있도록 재활하자.
그때부터 필라테스도 해보고, 헬스도 해보고,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은 하나씩 도전해봤다.
그러던 어느 날, 복직 날짜가 정해졌다.
복직하기 전, 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도전의 거의 마지막이라면, 내 한계를 한번 시험해보자.'
그렇게 등산을 해보기로 했다.
(등산은 거창하고 둘레길 오르는 정도다..ㅎ)
편마비로 등산을 한다고 하니 가족들은 모두 말렸다.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했다.
혼자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도 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당시에도 일주일에 한 번꼴로 넘어졌고, 발목 인대는 늘어날 대로 늘어나 있었다.
지팡이 없이 방향만 바꿔도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 준비했다.
사람이 없는 시간에 가기로 했다.
새벽이었다.
가방에는 지팡이와 물, 초콜릿을 넣었다.
발목을 다치지 않도록 발목보호대도 두 개나 찼다.
새벽 6시 40분.
만반의 준비를 하고 택시를 탔다.
등산로 입구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기력이 떨어지면 위험할 것 같아서 시리얼바와 우유로 배도 채웠다.
가족들과 한두 번 와봤던 곳이었다.
그래서 길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가 아프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올라가 보니 달랐다.
계단이던 길이 갑자기 자갈길이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걸 내가 올라갈 수 있나?'
돌을 잘못 밟아 발목이라도 삐끗할까 봐 땅만 바라봤다.
다른 등산객들의 진로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힘들다는 걸 티 내고 싶지도 않았다.
감각이 떨어져 발바닥으로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지면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힘을 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80% 오른쪽, 20% 왼쪽.
왼쪽을 운동하러 왔는데 오른쪽이 거의 다 했다. ㅎㅎ
그렇게 20분쯤 올라가니 중간 정상 같은 곳이 나왔다.
조금 더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20분쯤 지나자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210m 정도의 낮은 산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높이가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휙 꺾여버리는 발목으로 올라온 산이었다.
올라가다 한 번 넘어져 손가락도 까졌다.
내려올 때는 더 힘들었다.
왼쪽 다리가 자꾸 뻗쳐서 마음대로 조절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끝까지 내려왔다.
가족들은 위험하다고만 했다.
그래서인지 지나가던 사람이 건넨 한마디가 더 크게 남았다.
"화이팅하세요!"
별것 아닌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날의 나에게는 그 한마디가 정말 큰 응원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다시 힘을 냈다.
편마비 상태로 산에 오르는 건 절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해보니,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날 내가 얻은 건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만이 아니었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도 내 방식으로 해보면 가능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무심코 건넨 응원의 한마디가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뒤로 나는 조금 더 많이 해보기로 했다.
꼭 잘할 필요는 없었다.
꼭 남들과 같은 방식일 필요도 없었다.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일단 해보는 것.
그게 내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