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기술인데 왜 수도권에는 기회가, 지역에는 공백이 남는가
서울의 한 공유오피스에서는 아침부터 생성형 AI로 시장조사 보고서를 만드는 회의가 열린다. 같은 시각 지역 산업단지의 관리자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멈춘 생산라인과 자동화 견적서를 번갈아 본다. 두 장면 모두 AI를 말하지만, 한쪽에서는 새 직무의 이름이 생기고 다른 쪽에서는 남은 일의 빈자리를 기계가 메운다. 기술은 전국에 동시에 접속되지만 기회는 같은 속도로 도착하지 않는다.
경제학의 집적경제는 기업과 사람, 정보가 가까이 모일수록 생산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설명한다. 새로운 도구는 이 오래된 힘을 약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터넷은 거리를 지웠지만 중요한 회의와 투자, 채용은 오히려 몇몇 도시에 더 모였다. AI도 화면 속에서는 어디서나 같지만, 그것을 일자리로 바꾸는 자본과 인재와 조직은 이미 특정 장소에 쌓여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질문은 일자리가 몇 개 사라지느냐에만 머물 수 없다. 어떤 지역에는 고임금의 보완적 일자리가 생기고, 어떤 지역에는 대체 압력이 먼저 오는지 살펴야 한다. 기술의 충격은 직업의 경계뿐 아니라 지도의 경계도 다시 그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026년 9월 생성형, 에이전틱, 피지컬 AI를 구분해 직업별·지역별 노출도를 분석했다. 생성형 AI 노출도는 서울이 가장 높고 세종, 경기, 인천이 뒤를 이었다. 에이전틱 AI도 서울, 세종, 경기 순으로 높았다. 반면 로봇과 자동화처럼 현실의 작업을 수행하는 피지컬 AI 노출도는 경북, 전남, 충북, 울산 등 비수도권에서 높게 나타났다.
노출은 곧 해고를 뜻하지 않는다. 어떤 업무는 AI와 결합해 생산성과 임금이 오르고, 어떤 업무는 줄어들며, 새로운 업무가 그 사이에 생긴다. 실제 초기 징후도 엇갈렸다. 생성형·에이전틱 AI에 많이 노출된 직업의 취업자는 최근 늘었고 그 증가를 수도권이 주도했다. 반면 피지컬 AI 고노출 직업의 취업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에서 장기간 감소해 왔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산업의 출발점이다. AI 관련 지식서비스 종사자의 71.9%, 반도체 제조업 종사자의 74.4%가 수도권에 있다. AI 투자와 숙련노동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면 이미 사람이 많은 곳에 투자가 붙고, 투자가 많은 곳으로 다시 사람이 이동한다. 한국은행이 경고한 것은 기술의 단순한 대체 효과보다 이 순환의 자기강화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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