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많은데도 왜 노인 세 명 중 한 명은 빈곤선 아래에 머무는가
병원 안전 분야에는 ‘스위스 치즈 모델’이라는 오래된 비유가 있다. 여러 장의 치즈가 겹쳐 있으면 한 장의 구멍은 다음 장이 막아 준다. 그러나 각 장의 구멍이 우연히 한 줄로 포개지는 순간 위험이 통과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사고가 개인 한 사람의 실수보다 여러 방어층의 결함이 이어질 때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노후소득보장도 여러 장이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노인 일자리, 주택연금이 차례로 놓여 있다. 제도 이름만 세면 그물은 촘촘해 보인다. 하지만 가입 이력이 짧고, 집은 있으나 현금이 없고, 생계급여를 받으면 기초연금이 사실상 상쇄되는 사람에게는 구멍이 같은 자리에 놓인다. 노인의 가난을 어느 한 연금의 부족으로만 보면 이 겹침을 놓친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연금을 얼마 더 줄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어느 제도의 문턱에서 멈추고, 다음 제도로 넘어가지 못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한국보건슬롯연구원이 2026년 9월 발표한 연구는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빈곤율을 35.9%로 제시한다. 중위소득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노인이 세 명 중 한 명꼴이라는 뜻이다. 통계청의 기준을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으로 잡으면 2024년 상대빈곤율은 39.8%이다. 연령 기준과 자료가 달라 숫자는 조금 다르지만, 고령층의 가난이 전체 인구 빈곤율 15.3%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결론은 같다.
정부는 2026년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을 월 34만9,700원으로 올렸고 약 779만 명이 받는다. 수급자는 넓고 금액도 물가에 맞춰 늘었다. 그럼에도 빈곤율이 높은 까닭은 노후의 소득 구조가 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간 정규직으로 보험료를 낸 사람과 영세 자영업, 돌봄 노동, 농어업, 단절된 경력을 살아온 사람은 같은 나이에 도착해도 출발 자산과 연금액이 전혀 다르다.
평균은 이 차이를 감춘다. 2024년 전체 가구의 평균소득은 7,427만 원이고 처분가능소득은 6,032만 원이지만, 그 숫자가 홀로 사는 노인의 월세와 약값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노인빈곤을 이해하려면 평균액보다 소득원들의 조합을 보아야 한다.
상대빈곤율은 굶는 사람의 수를 직접 세는 지표가 아니다. 균등화한 처분가능소득이 중위소득의 50% 아래인 사람의 비중이다. 슬롯 전체 소득이 오를 때 노인의 소득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빈곤선 아래에 남는다. 따라서 35.9%라는 숫자는 생계의 절대 부족과 함께 성장의 과실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보여 준다. 물가가 오를수록 정액 급여의 실질 구매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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