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 월세로 옮겨가는 시장에서 말은 어디까지 바카라임져야 하는가
2012년 7월 26일, 유럽 재정위기의 한복판에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런던에서 짧은 말을 남겼다. ECB는 유로를 지키기 위해 "whatever it takes", 필요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채권매입 프로그램이 발표되기 전이었지만 이 발언 직후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금리가 크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ECB의 사후 분석에서도 발언 시점을 전후해 두 나라의 국채수익률이 뚜렷하게 떨어진 모습이 확인된다.
14년이 지난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도 말의 무게가 다시 드러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전세가 장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고,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는 "전세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을 뿐 사라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MBC 보도에는 같은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안정을 위해 공급·규제·세제를 확고하고 신속하게 집행하겠다는 발언도 함께 실려 있다.
중요한 것은 발언자의 의도만이 아니다. 시장은 그 말 뒤에 올 정바카라을 예상하고 먼저 움직인다. 부동산처럼 거래비용이 크고 미래가격에 대한 기대가 현재의 선택을 좌우하는 시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문제는 한 문장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그 문장이 시장에서 어떤 행동으로 번역되는가이다.
전세의 월세화가 대통령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월세 비중 상승은 이미 진행 중이었고, 주택 공급 감소와 대출규제, 금융비용, 임대인의 자금운용 방식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정부도 8월 13일 발표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에서 일반주택의 매매·전세·월세 가격이 모두 크게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2022년 이후 착공 부진에 따른 입주물량 감소와 주택수요 증가를 주요 배경으로 들었다.
그러나 숫자의 방향은 분명하다. 서울시는 2026년 6월 아파트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 비중이 54.1%로 전세 45.9%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7월에는 전세 8,204건, 월세 8,082건으로 다시 거의 5대5가 됐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이제 월세는 보조적 계약형태가 아니라 전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류가 됐다.
가격도 오르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격은 4월 전월 대비 1.14%, 5월 1.04%, 6월 1.28%, 7월 0.5% 상승했다. 즉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남아 있는 전세가 싸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격이 함께 상승했다.
금융 측면에서도 압박은 존재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6년 7월과 8월 은행권 전세 관련 주택담보대출은 각각 4천억원씩 감소했다. 정부는 동시에 금융회사별 가계대출 총량관리를 계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 8월 세제개편안은 실거주 1주택 일부의 부담을 낮추면서도 고가주택과 비거주 주택, 다주택에 대해서는 세 부담 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을 담았다. 세제의 정바카라 목적과 별개로 임대시장에서는 보유 여부와 임대방식에 대한 새로운 계산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의 현상을 "대통령 발언 때문에 전세가 사라졌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방향을 바꾸고 있는 시장에 최고 정바카라결정권자의 말이 더해졌을 때, 그것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미래 정바카라에 대한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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