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온몸을 휘감는다. 모든 것에 의미를 잃고 모든 것에 통제력을 잃고 나약하게 굴러 떨어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만 같다. 공포가 밀려온다. 겉으로는 아무런 일도 없었고 아무런 변화도 없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천국에서 추락해 지옥불 속에 떨어질 것처럼 처참한 기분이다. 몸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소 하던 대로 열심히 팔다리를 내저으며 수영을 하고 있다. 정신은 뒤통수를 제대로 한 방 맞고 넋이 나간 듯 텅 비어 그저 몸이 하는 대로 부유하고 있다.
이렇게 숨을 쉬면 벗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 의식이 없이 움직여도 살아가지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절망하는 의식의 짓눌림이 없이 그냥 몸이 자기 할 일 하듯 마음이 마음의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절망이라는 의식이 찾아와 훼방을 놓더라도 쭉 주구장창 계속 절망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잠깐 비켜 있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제 각자의 할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텅 빈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대출한 전자바카라을 열어본다. 글자만 무수히 점을 찍듯 박혀 있다. 글자들이 문장들이 문맥들이 저마다의 뜻을 가지고 다가와주지 않는다.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냥 살아 있다는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로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하고 싶은데 아무거나 다가와주지 않는다. 막막하다.
화면 창에 '막막하다'라고 입력해 본다. "의지할 데가 없고 길이 보이지 않아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아득하다는 뜻의 우리말입니다. 갈피를 잡기 어렵거나, 앞날이 캄캄할 때 주로 씁니다."라고 막막하다는 뜻풀이가 검색된다. 다시 '막막하고 답답하다'라고 타이핑을 해본다. "마음이 많이 힘들고 지치신 것 같습니다. 지금 느끼는 막막하고 답답한 감정은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큰 스트레스나 고민 때문에 생길 수 있습니다. 잠시 깊게 숨을 쉬고 마음을 가라앉혀 보세요."라고 AI가 상당하듯 답변해 준다.
그제야 '아,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구나.' 하는 인식이 든다. 검색해서 AI가 가르쳐주어야 나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것인가. 나 자신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한심하다. 그냥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을 AI가 가르쳐 준 대로 받아들이니 숨쉬기가 한결 나아진다. 이럴 때 컴퓨터의 AI가 나의 상담사일까 친구일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