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삶의 방식 3
끝내 입을 열지 못한 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지키고 싶은 것들
잃고 싶지 않은 것들
말하지 못한 것들을
삼킨 채 오래 머물렀다.
잠시 멈춰 끝을 생각했다.
모든 것이 끝난다면
무엇을 남기게 되는가.
좋은 사람으로 살았다는 기억
정직하게 살아냈다는 증명
열심히 살아온 삶의 인정인가.
그 질문 앞에서 감췄던
모습이 드러났다.
괜찮다는 말 뒤에 다친 나
이해한다는 말 뒤에 지친 나
지키겠다는 말 뒤에 버틴 나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내 마음의 상태보다
돌아올 반응을 살폈다.
그 마음들이 쌓이고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
흘러나오듯 말하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수많은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오래 묻어 둔 마음을 꺼내는 일은
낯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한마디를 꺼내고 나면
내 안에 공간이 조금씩 생겼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을 모른척하지 않았다.
글을 쓰며 미처 들여다
보지 않았던 마음들이 보였다.
왜 그렇게 아팠나.
무엇을 지키려 했나.
외면하지 못한 건 무엇인가.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잊었다고 생각한 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해되지 않았던 내가
하나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나를 마주하면
살아낸 시간을 받아들였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고.
서로 지나온 길은 달랐지만
마음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끝을 생각해 본 사람이
깊은 말을 꺼낸다는 것은
잃고 싶지 않은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내가 살아낸 것을 말한다.
솔직한 말은 서툴지만
마음 한가운데를 드러낸다.
그 안에 외면하지 않은 삶이 있다.
이미 진실로 살아 있는 글이다.
내가 살아낸 것을 쓴다.
나를 숨기지 않기 위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끝을 생각해 본 사람은
무엇을 남길지 생각한다.
직접 살아낸 진실을
말과 글로 남긴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에도 성장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상대를 도와주면 나도 무언가를 배우지 않을까. 나는 그런 마음으로 많은 일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어떤 경험이든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이 있었다. 힘들었던 일에서도 의미를 찾았고, 지나고 나면 얻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어도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 해보자고, 이왕 하는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 안에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배울 점을 찾는 것. 그것이 성장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배우는 동안 정작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은 뒤로 밀려났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 할 일처럼 여겼고,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부터 설득하려 했다. 지금은 싫어도 나중에는 도움이 될 거라고, 힘들어도 이겨내면 성장할 거라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보다 내 마음을 바꾸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싫은 일까지 억지로 받아들였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하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믿었기에, 그 가능성 안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까지 들어 있다는 사실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데리고 계속 앞으로 갔다. 말을 하고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있는 것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마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다는 말 뒤에 안 괜찮았던 내가 있었다. 이해한다는 말 뒤에 지쳐 있던 내가 있었다. 지키겠다는 말 뒤에 버티고 있던 내가 있었다. 나는 그 마음들을 모르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알고도 외면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계속 살아가려면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 편이 나았을 테니까. 마음을 들여다보면 멈춰야 할 수 있고,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인정할 수 있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나를 이만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작가님이 내 글이 깊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내가 살아낸 것을 쓴 글이기 때문일까.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그 안에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나는 오랫동안 내 안에 많은 것을 눌러 담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들, 설명하기 어려웠던 사건들, 이해해 보려고 거듭 생각했던 시간들.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쌓여 있었다.
속 깊은 이야기를 글로 본격적으로 꺼내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그전에도 꾸준히 글을 썼다. 일상의 소소한 장면을 기록하고, 힘든 현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 애썼다. 좋은 면을 발견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의미를 찾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으려 했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그 글들에는 내가 미처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지금은 온라인카지노에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내놓아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글을 쓰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믿음이 생겼다. 여기는 안전하다고. 나를 감추지 않고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그 믿음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내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고, 그때는 알지 못했던 마음을 발견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나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잊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왜 그렇게 아팠는지, 무엇을 지키려고 했는지,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했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만남도 생겼다. 내 글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만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온 것이 아니었구나. 서로 살아온 모습은 달라도 어떤 마음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구나.
나는 늘 혼자라고 느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기 어려웠고, 내가 겪은 일을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내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자리에 누군가 함께 있다는 감각이 찾아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글로 꺼내놓는 일은 먼저 나를 닦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이다. 아직 알아가는 중인 것을 다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지나온 길에서 발견한 것을 정직하게 남길 수 있다.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굳이 글을 쓰고 나누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순간들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입맛이 없고, 숟가락조차 들지 못하던 날들이 있었다. 일어나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을 벅차게 몰아쉬며 벽을 짚어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고, 밤에는 숨죽여 울던 날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하면서도 나를 계속 밀어붙였다. 하지만 내 삶에 어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따뜻한 날들도 있었고, 가족들과 기쁘게 웃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힘든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에는 그런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고통에 시선이 붙들려 다른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삶의 한쪽 면만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팠던 나를 들여다보다가 그 안에서 버텨온 나를 발견했다.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시간 속에서 나를 살리려 애쓰던 마음을 보았다. 어둠을 지우려고만 할 때는 보이지 않던 빛이, 어둠을 가만히 바라보자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었는지. 나는 그 끝에 무엇이 남을지 기대하게 되었다. 끝은 마지막이면서 시작이었다. 하나씩 들여다보고, 불필요하게 붙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내 안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모아 가다 보면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정말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를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이 배우고, 할 수 있는 일을 늘려가더라도 정작 내가 사라진다면 무엇을 위한 성장일까. 다른 사람을 돕고 좋은 일을 하면서도 내 마음을 외면한다면,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구를 돌보고 있는 것일까. 나를 잃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너는 무엇을 원하니.
이것을 정말 하고 싶니.
이 길을 계속 가고 싶은 거니.
예전에는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지를 먼저 묻는다. 이것을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전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돌아본다. 싫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도 그 마음을 억지로 설득해 바꾸려 하지 않는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반드시 열린 삶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가능성을 닫을 줄 아는 것도 나를 아는 일이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었다. 더 많은 것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아니었다. 내가 무엇에 마음을 쓰고, 어디에 힘을 쏟고 싶은지 알아가는 일이었다. 모든 길을 갈 수 있다고 믿는 것보다 내게 맞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더 이상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밀어붙이고 싶지 않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내 안의 불편함을 지우고 싶지도 않다. 때로는 싫다고 말하고, 할 수 있어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멈춰서 내 마음을 살피고 싶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돌아보면 나는 오랫동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더 배우고, 더 이해하고, 더 잘 해내려 했다. 이제는 조금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무엇을 더 갖추어야 하는지보다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알아보려 한다. 무엇을 더 해내야 하는지보다 지금의 나를 외면하지 않는 법을 배우려 한다.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 성장이라는 것을, 나는 글을 쓰면서 알아가고 있다. 이제는 나로 돌아와야 한다고. 내가 나로 살아야, 내가 사랑하는 것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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