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슬롯는 갈등이 많다. 정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대, 젠더, 지역, 노사, 노노, 교육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슬롯적 문제가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흔히 이를 ‘양극화’라고 부른다. 갈등은 어느 나라, 어떤 공동체에도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난히 타협이 어렵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여기에 뜻밖의 해석을 제시한다. 한국 슬롯의 갈등은 단순히 이해관계의 충돌이 아니라 ‘정의관(正義觀)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이 바카라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한국 슬롯의 모순을 하나의 철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놀랍다”, “최근의 정치·슬롯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이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옳음’
민주주의 슬롯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해관계는 조정할 수 있지만, ‘옳고 그름’은 쉽게 타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두 기업이 이익을 놓고 협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모두 “나는 정의의 편이고, 상대는 정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하면 협상은 타결되기 어려워진다.
오늘날 한국 슬롯의 논쟁을 보면 이러한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정바카라을 두고 토론하다가도 곧 “상식이 없다”, “양심이 없다”, “국민을 속인다”, “반민주적이다”와 같은 표현으로 이어진다. 정바카라에 대한 평가보다 상대의 도덕성을 먼저 판단한다. 논쟁은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재판처럼 변한다.
‘내가 옳다’는 확신은 민주주의를 어렵게 만든다
사실 민주주의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제도가 아니다. 다수결로 승패를 판가름하는 제도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를 종종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으로 오해한다. 선거에서도, 국회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우리는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상대를 굴복시키려 한다. 정치적 반대자는 경쟁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고, 토론은 설득이 아니라 응징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거가 끝나도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승자는 자신이 정의를 실현했다고 믿고, 패자는 정의가 무너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다음 선거는 정바카라 경쟁이 아니라 정의의 회복을 위한 전쟁처럼 인식된다.
타협은 원칙을 버리는 것일까
한국에서는 “타협했다”는 말이 칭찬보다 비판, 나아가 비난으로 들릴 때가 있다.
‘타협’을 택한 사람은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신념을 버렸다.” “적과 손잡았다.”와 같은 평가를 받기 쉽다.
그러나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안정적인 슬롯는 갈등이 없는 슬롯가 아니라 갈등을 제도 안에서 조정하는 슬롯였다. 타협은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정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가 던지는 통찰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슬롯는 도덕을 중시하는 문화 덕분에 높은 시민의식을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 도덕성이 상대를 심판하는 방향으로 흐를 때 공동체는 쉽게 분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리학은 원래 ‘자기 수양’의 철학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분석의 틀로 삼는 성리학이다. 오늘날 우리는 성리학을 종종 엄격한 도덕주의로 기억한다. 그러나 본래 성리학의 핵심은 남을 심판하는 데 있지 않았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닦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수기(修己) 없는 치인(治人)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성리학의 기본 정신이었다.
그런데 현대 슬롯에서는 이 순서가 뒤집힌 것처럼 보인다. 자기 성찰보다 상대 비판이 앞서고, 자기 수양보다 상대 심판이 먼저 이루어진다.
오구라 기조의 바카라이 현대 한국 슬롯를 성리학으로 읽으면서도 단순한 전통 예찬에 머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한국 슬롯가 성리학적 문화의 힘을 이어받았지만, 그 힘이 어떤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묻는다.
공동체는 같은 생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한국 슬롯는 지금도 수많은 갈등 속에 있다. 그러나 모든 갈등을 없애는 슬롯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적으로 만들 것인가,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이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없애는 제도가 아니라 상대와 함께 살아가는 제도다. 공동체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규칙을 지키기 때문에 유지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승리’보다 절차이고, ‘응징’보다 신뢰이며, ‘정답’보다 공존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한국인을 비판하려는 바카라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슬롯를 움직여 온 문화적 에너지를 이해하려는 바카라이다. 그 에너지는 정의를 향한 열망이었고, 더 나은 슬롯를 만들려는 도덕적 열정이었다.
문제는 그 열정이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 아니라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힘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나의 정의만이 유일한 정의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러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타협을 필요로 하고, 대화를 필요로 하며, 무엇보다 상대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어쩌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옳은 슬롯를 만들고자 하는가,
아니면 옳은 사람만 남는 슬롯를 만들고자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한국 슬롯의 갈등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갈등을 없애려는 슬롯가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슬롯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