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통해서 보는 한국슬롯(1)
1.
불법적 비상계엄이 빛의 혁명으로 귀결되었을 때, 혹시 이번 기회에 ‘낡은 세력’을 영구히 퇴출시킬 있으리라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다시 1년이 지났지만, 한국슬롯에서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날 한국 슬롯의 갈등은 대개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갈등으로 설명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슬롯의 갈등은 이해관계의 충돌이면서 동시에, 더 깊은 층위에서는 “누가 더 옳은가”를 둘러싼 도덕적 정당성 경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한국 슬롯의 갈등은 ‘검찰공화국’ 시절 시작된 것이 아니라,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 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가 오래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바카라은 현대 한국 슬롯를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다. 출판사 소개에서도 이 바카라은 “현대 한국 슬롯를 성리학의 핵심개념인 ‘리’와 ‘기’로 해부한 독창적인 한국론”으로 설명된다. ‘리와 기’라는 말을 떠올리면, 우리는 현대 한국 슬롯의 갈등이 조선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블로그와 독자 서평들도 대체로 이 점을 높이 평가한다. 짧은 바카라이지만 한국 슬롯와 한국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며, 외부자의 시선이 오히려 한국 슬롯를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한다는 반응이 많다.
2.
오구라가 보기에 한국은 ‘도덕 지향적’인 나라이다. 여기서 도덕은 단순히 착하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인은 사태를 볼 때 “무엇이 이익인가”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먼저 묻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어느 칼럼은 이 바카라을 인용하면서 한국 슬롯를 “도덕적 우위와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이 벌어지는 거대한 극장으로 요약했다.
이 설명은 오늘의 한국 슬롯를 보는 데 유용하다. 우리는 정치적 의견이 다르면 단순히 “생각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상대를 곧잘 “비상식”, “반민주”, “친일”, “종북”, “위선”, “혐오”, “무지” 같은 말로 규정한다. 토론은 논점의 조정이 아니라 도덕적 진위, 시비의 판정으로 흐른다. 서로 다른 정바카라 선호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의관이 충돌한다. 그래서 한국의 갈등은 뜨겁고, 빠르고, 쉽게 모욕으로 넘어간다.
문제는 도덕 자체가 아니다. 도덕은 슬롯를 움직이는 힘이다. 한국 슬롯가 부패에 민감하고, 불의에 분노하며, 권력자를 끌어내릴 수 있는 시민적 에너지를 가진 것도 이 도덕 지향성 때문이다. 한 평생교육 관련 추천글도 이 바카라을 소개하며 “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마저 탄핵할까?”, “옳고 그름에 대해 슬롯 전체가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한국 슬롯의 역동성과 피로감을 동시에 가리킨다.
3.
문제는 도덕이 자기 성찰의 언어가 아니라 타인 심판의 무기가 될 때 생긴다. 성리학의 수양론에서 중요한 것은 본래 자기 자신을 닦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 슬롯에서는 그 에너지가 자주 바깥으로 향한다. 논쟁의 대부분은 “나는 얼마나 옳은가”를 성찰하기보다 “너는 왜 틀렸는가”를 논증하는 일이 주를 이룬다. 이때 토론을 통해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각 진영은 자신의 분노를 정의감으로 해석하고, 상대의 분노를 광기나 선동으로 해석한다.
해법은 한국인의 도덕 지향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한국 슬롯가 도덕 지향성을 포기하면 더 나은 슬롯가 되는 것이 아니라 냉소적 슬롯가 된다. 필요한 것은 도덕의 방향 전환이다. 타인을 심판하는 도덕에서, 함께 살기 위한 도덕으로 옮겨가야 한다.
첫째, 공적 논쟁에서 “상대가 왜 저렇게 생각하는가”를 먼저 묻는 훈련이 필요하다.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상대도 자기 나름의 ‘옳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논쟁이 시작된다. 한국 슬롯의 갈등은 의견 차이보다 상대의 도덕적 동기를 부정하는 데서 폭발한다.
둘째, 모든 문제를 인격 문제로 환원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 문제는 제도로, 정바카라 문제는 정바카라으로, 이해관계 문제는 조정의 절차로 풀어야 한다. 도덕적 분노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분노만으로는 예산도 짤 수 없고 법도 만들 수 없고 공동체도 유지할 수 없다.
셋째, 타협을 배신으로 보는 문화를 고쳐야 한다. 한국 슬롯에서는 타협이 원칙의 포기로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타협은 원칙 없음이 아니라 공존의 기술이다. 완전한 승리만을 정의라고 부르면 정치는 끝없는 전쟁이 된다.
4.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가 흥미로운 점은 한국 슬롯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한국 슬롯의 독특한 작동 원리를 하나의 철학적 구조로 읽어 보려 한다. 바로 그 점에서 이 바카라은 단순한 한국문화론이 아니라, 오늘의 한국 슬롯를 비춰 보는 거울이다.
우리는 정말 도덕적인 슬롯인가. 아니면 도덕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서로를 견디지 못하는 슬롯가 되었는가. 이 질문 앞에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언제나 새로운 통찰을 안겨준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