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와 소

방정환동화 2.

by소걸음

개구리와 소

cef69830-ba83-425e-88ef-60d3d9bbc853.pngAI가 생성한 이미지

개구리 새끼 두 마리가 연못가에서 놀다가 한 마리는 큰 소의 굵다란 발에 짓밟혀 죽었습니다.


죽지 않은 한 마리가 엄마 개구리에게 뛰어가


"어머니, 무엇인지 배가 뚱뚱하고 머리에 뿔이 두 개 달린 짐승이 커다란 발로 언니를 짓밟아 죽이고 갔습니다. "


하였습니다. 엄마 개구리는 그 말올 듣고 배를 불쑥 내밀어 뚱뚱하게 해 가지고


"그 짐승이 배가 얼마나 크더냐? 이만큼 크더냐?"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구리가 아무리 배를 크게 해도 소만큼 클 수가 있습니까.

새끼가


"아니요, 더 커요."


하니까 엄마 개구리는 힘껏 배를 크게 하고


"이렇게 크더냐?"


하였습니다.


또 '더 커요.' 하니까 점점 더 크게 배를 내어밀다가 툭 터져서 죽어 버렸습니댜


-<조선일보> 1925년 7월 15일


[편집자 주] 방정환은 1925년 7월 13일부터 하루~5일 간격으로 <조선일보>'어린이 신문' 난에 동화 한 편씩 모두 30여 편을 연재하였습니다.

이 동화를 오늘의 눈으로 읽어 보면, 첫째, '대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흉내내거나 닮으려고 하는 허영심 또는 무모함을 경계하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둘째, 성장주의, 팽창주의의 말로에 대한 예언적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좀더 부연하고 확대해석을 하자면, 당시 세계를 풍미하던 팽창주의, 즉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예언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 오늘 우리 슬롯에 가장 고질적인 병원(病原)이 되고 있는 '비교'의 폐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우리)는 오직 나(우리)일 뿐, 다른 것(소)이 못 된 존재(개구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넷째, 굳이 동학(천도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내 몸에 모신 한울님 - 나의 나 됨 - 을 찾지 아니하고, 외부/대상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려 할 때, 그것은 곧 패망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이런 관점에서 이 '동화'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이유도 분명해집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이 '너의 한계'를 인정하라라는, 소극적이고 패배주의적인 말로 들릴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지기(知己: 자기 스스로를 앎)로부터 모든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읽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접근이 될 것입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1930년대 이후 '더 크게'를 외치며 따라가다가 결국 '배가 터져 죽어 버린' 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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