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괜찮아지는 법만 배웠다
조용한 벽은 언제나 무언가를 가로막기 위해 서 있지만,
가장 깊은 고요로 세상을 지탱한다.
타인의 굳게 닫힌 입술처럼 단단하고,
끝내 고백하지 못한 말들처럼 묵직하다.
낮 동안 쏟아지던 빛과 소음이 비켜 간 자리에
벽은 홀로 서서 지상의 무게를 받아낸다.
차가운 시멘트의 틈새마다,
바랜 페인트의 갈라진 금마다
지나간 계절의 온기와 고독이 고스란히 켜를 이룬다.
기댈 곳 없는 자들이 가만히 이마를 대었던 자리,
어둠 속에서 밤새 번민하던 이의 시선이 머물던 기슭.
벽은 아무것도 밀어내지 않고
자신을 스쳐 간 모든 한숨과 슬픔을
묵묵히 제 내부로 수용하여 안으로 안으로 침전시킨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제 존재를 증명하려 부르짖을 때
벽은 오직 침묵으로써 자신을 증명한다.
말없이 섰는 그 거대한 평면 속엔
아직 다다르지 못한 수많은 사유의 지평이,
우주보다 깊은 수직의 정적(靜寂)이 숨 쉬고 있다.
마침내 집이 무너지고 뼈대마저 스러지는 날에도
벽에 새겨진 그 침묵의 궤적은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입자로 남아
지상에 머물렀던 삶의 마지막 입체(立體)를 가만히 증언할 것이다.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설명하려면 먼저 내가 무엇 때문에 아픈지 알아야 했고, 그것을 알아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간신히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상대가 떠난 뒤이거나,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너무 오래된 일이 되어 있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자 나는 마음을 설명하는 대신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서운한 일은 서운한 대로, 억울한 일은 억울한 대로 마음속에 두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꺼내 보지 않아도 되는 곳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하면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다.
아침에는 일어나 씻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적당한 순간에 웃었다. 누군가 안부를 물으면 별일 없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별일이 없는 날도 많았다. 밥을 먹었고, 잠을 잤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았다. 슬픔이 하루의 모든 시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날에는 내가 한때 아팠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나는 그것을 회복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다. 더는 아프지 않다고 생각할수록,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도움을 청하는 대신 방법을 찾았고, 방법을 찾지 못하면 견딜 수 있는 크기로 문제를 줄였다. 누군가 보고 싶어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서운한 일이 생겨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상대에게는 상대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나에게는 나의 마음을 처리할 바카라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은 실망할 일도 적었다.
그것은 제법 합리적인 삶의 방식이었다.
적어도 혼자 있을 때는 그랬다.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가 아니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굳이 혼자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도, 나는 다른 사람을 찾지 못했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그 손을 오래 잡고 있지 못했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이제는 괜찮다고, 조금만 지나면 정말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대부분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 괜찮아졌다. 혼자서 울음을 그치는 법을 알았고,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는 법을 알았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날을 시작하는 법을 알았다.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 일도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견디는 법을 배웠다. 삶은 그렇게 많은 일을 가르쳤다.
그러나 삶이 가르쳐 주지 않은 것도 있었다.
괜찮지 않은 날에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일.
나는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한동안 알지 못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기대었다가 다시 혼자 남겨지는 일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한 번 내어 준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일이 처음부터 내어 주지 않는 것보다 아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증명해 온 나머지, 이제 와서 견딜 수 없다고 말하면 그동안의 모든 시간이 무너질 것 같았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나는 혼자 견디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익숙함은 편리하다. 반복해서 해 온 일에는 더 이상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아픈 일이 생기면 혼자 생각하고, 마음이 복잡해지면 혼자 걷고, 견디기 어려운 밤에는 잠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하루를 마치는 일은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그런데 익숙함에는 한 가지 위험이 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지,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해 왔다. 실제로 혼자 있는 시간은 좋았다. 누구의 기분도 살피지 않아도 되었고, 내 표정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침묵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으며, 혼자 먹는 식사에도 나름의 질서가 생겼다. 나는 내 생활을 꾸렸고, 내 문제를 해결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행복을 만들어 냈다.
그 모든 것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진실이라고 해서 그것이 전부인 것은 아니었다.
혼자 있는 것이 좋다는 말과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는 마음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과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는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랫동안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면 아직 충분히 단단해지지 못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필요하지 않은 척하는 법을 배웠다.
정작 필요한 순간에조차.
어떤 저녁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잘 견뎌 왔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계속 혼자 견뎌야 한다는 뜻은 아닐 텐데.
그 생각은 특별한 사건이 있던 날 찾아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날도 아니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한꺼번에 닥친 날도 아니었다. 하루가 끝나 가고 있었고, 나는 늘 하던 대로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창밖은 어두웠고, 방 안에는 오래 켜 둔 불빛이 있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다만 그날은 나 자신에게 더 이상 괜찮은 사람인 척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이 힘든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오래된 일을 아직 놓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나 자신을 돌보는 일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의 온기를 잊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조금 지쳐 있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피로도 피로였다. 무엇을 잃었는지 말할 수 없는 상실도 상실이었다.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이 견디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가 나를 잘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일까지 혼자 떠맡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차이를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은 소중하다.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삶에서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배워야 할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돌본다는 이유로 모든 슬픔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도움을 받을 만큼 충분히 힘들어질 때까지 버티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하지 못한 채 그저 곁에 있어 달라고 해도 된다.
우리는 왜 그 말을 배우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릴까.
어쩌면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에는 상대를 믿는 용기뿐 아니라, 기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용기도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늘 괜찮던 사람이 괜찮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일. 언제나 해결바카라을 찾던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을 내어 놓는 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던 사람이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의 시간을 차지할 수 있음을 허락하는 일.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아픔을 덜어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아플 때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빌리는 일조차 망설인다.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내일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으며, 어쩌면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된다.
혼자서 견딘 시간은 나를 살아남게 했지만, 그 시간만으로 나를 충분히 살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사람은 혼자서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을 혼자 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에게도 앉아 쉴 자리가 필요하고, 길을 잃지 않는 사람에게도 누군가와 함께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은 한 번도 기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어쩌면 단단함이란 자신이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더는 견디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혼자 해결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마음이 복잡해지면 생각을 정리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는다. 오랫동안 몸에 밴 방식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날에는 누군가에게 연락하려다가도 결국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상대가 바쁠까 봐, 괜한 걱정을 끼칠까 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만둔다.
그러나 이제는 가끔 멈춰 서려고 한다.
정말 괜찮아서 말하지 않는 것인지, 괜찮지 않다는 말을 할 용기가 없어서 침묵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서 혼자 있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기대는 방법을 잊어버려 혼자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그 질문에 언제나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질문하는 일은 달라진 삶의 시작일 수 있다.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사람에게 기대는 일은 단순히 누군가를 찾아가는 일이 아닐 것이다. 혼자 견디는 것이 유일한 선택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감추지 않아도 관계가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는 일.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지금까지 혼자 살아온 자신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일.
우리는 기대면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조금 늦게 배웠다.
늦게 배웠다고 해서 너무 늦은 것은 아닐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몇 번이고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떠나보내는 법을 배우고, 혼자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러고도 다시 누군가를 믿는 법을 배운다. 한 번 배웠다고 해서 영원히 능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기대는 법을 배우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어느 순간에는 자기 자신에게 기대며, 마침내 자신이 기대어도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며, 그 두 가지가 반드시 서로 반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늘도 나는 내 삶을 살아간다. 해야 할 일을 하고, 내일을 준비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처리한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내게 중요하다.
다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으려 한다.
괜찮지 않은 날에는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때로는 누군가의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보고 싶다. 손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하는 날이 오더라도, 그것이 다시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 혼자가 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선택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에, 끝내 이해받지 못한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저녁에. 그런 순간들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라는 사실과 혼자여야 한다는 믿음 사이에는 작은 틈이 있다.
나는 이제 그 틈을 조금씩 넓혀 보려 한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기대어 쉬는 일이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혼자 견뎌 온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이제는 네가 모든 것을 혼자 해내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더는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동안 잘 견뎌 왔으니, 이제는 가끔 기대어도 된다고.
나는 가끔씩 기댈 곳이 없어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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