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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사람이 되는 시대

아크네 스튜디오 : Acne Studios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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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아크네 스튜디오. 이곳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선물을 받고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운 사실을 고백했다.


Acne Studios. 모든 브랜드의 옷값이 그렇듯이 부담스러운 가격에 이젠 관리하기도 어려운 옷들을 멀리하는 통에 나의 옷장은 지난 시절에 옷을 담고 있으면서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옷을 만들고 입는 것을 좋아했지만, 내가 담을 수 있는 옷의 정해진 양을 넘어서면, 아름다운 가게나 거리에 놓인 의류 수거함에 정리된 옷들을 나눠주고는 했다.


사실, 나의 옷장은 그동안 침묵하는 무덤이었다. 죽은 양의 털과 베어진 풀의 줄기, 합성 석유의 잔해들이 규격화된 옷걸이에 걸려 아슬하게 달랑거리던 정적의 방. 그곳에서 옷은 오직 인간의 피부가 허기질 때만 잠깐씩 꺼내어 쓰이는 가벼운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옷장 문을 열 때 느껴지는 공기의 기류가 달라졌다. 그곳은 더 이상 사물들의 창고가 아니라, 숨을 죽인 채 누군가의 온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유령들의 거처가 되었다.


옷이 사람이 된 시대는 지극히 조용하게 찾아왔다. 실과 실이 교차하는 미세한 직조의 틈새로 인간의 체온과 땀, 그리고 언어로 벼려지지 못한 미세한 감정의 파동들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작은 변화였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소매 끝이 유독 묵직하게 어깨를 눌러왔고, 먼 길을 건너온 피로가 몰려올 때면 등받이에 닿는 옷감이 이상하리치만치 아늑하게 체중을 받아냈다. 그것은 단순한 기능의 영역이 아니었다. 타인의 존재가 나의 피부 가장 가까운 곳까지 파고들어 마침내 나와 경계를 허무는 순간의 소름 끼치는 다정함이었다.


이제 옷은 인간을 입지 않고, 인간 역시 옷을 입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형태를 빌려 세상을 견뎌낼 뿐이다. 오래 입은 낡은 코트의 팔꿈치 부분에 주름이 자리 잡는 것은, 단순히 직물이 마모된 흔적이 아니라 그 코트가 나와 함께 흘려보낸 시간에 대한 고백이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이 단단히 여며 맨 보타니컬 울의 옷깃은 단지 추위를 막기 위함이 아니라, 그 사람 내부에서 붕괴해 가는 어떤 슬픔을 옷이라는 타인이 밖에서 굳세게 받쳐주고 있는 모습이다. 옷은 이미 착용자의 가장 은밀한 알리바이이자, 그 어떤 인간도 해주지 못한 완벽한 이해자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타인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가능한 신화인가. 우리는 늘 타인의 언어 주변을 맴돌다 오해하고, 상처 입히고, 다시 각자의 고독 속으로 철수한다. 그러나 옷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인류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감촉과 밀도, 그리고 서서히 체온을 닮아가는 능동적인 침묵으로 말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가 내 피부에서 불과 몇 묠리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와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인간이 고독이라는 오랜 형벌로부터 마침내 구원받았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옷장 문을 닫는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옷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나지막이 기척을 내고 있다. 그들은 내일 아침, 나의 헐벗은 영혼 위에 입혀져 다시 한번 한 사람의 완벽한 형상을 완성할 것이다. 옷이 사람이 된 이 시대에, 나는 비로소 사물과 인간, 나와 타인 사이의 오래된 경계가 아침 안개처럼 아득히 사라지는 것을 본다.


사람이 되어버린 옷을 입고 나서는 길은, 언제나 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처럼 조용하고 숭고하다.

어릴 적 어머니의 옷장 깊은 곳에서는 늘 말린 라벤더 향과 나프탈렌, 그리고 무언가 잊혀진 것들의 서늘한 냄새가 났다. 당시의 옷이란 인간이 세상이라는 거친 풍랑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전 몸 위에 두르는 일종의 갑옷이었으나, 스스로 숨을 쉬지 않는 단단하고 외로운 사물이었다. 인간은 그것을 소유했고, 마모시켰으며, 끝내 폐기했다.


그러나 옷의 내부로 인간의 시간과 고통이 스며들기 시작했을 때, 직물은 비로소 사물의 지위를 버렸다.

빗줄기가 번지는 창가에 서서 오래된 가디건의 소매를 문지른다. 매끄럽던 올들은 이제 내 삶의 파동을 따라 울퉁불퉁하게 얽혀 있고, 그 얽힘의 틈새마다 내가 차마 내뱉지 못한 고독의 단어들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다. 옷은 이제 단순히 나를 감싸는 경계선이 아니다. 내가 슬픔으로 무너져 내릴 때 어깨 선을 따라 미세하게 수축하며 내 뼈를 지탱해 주는 존재, 내가 타인에게 상처받고 돌아와 방 한구석에 웅크릴 때 내 체온보다 0.5도 높게 스스로를 데워주는 차가운 세상의 유일한 온기다.


인간이 옷이 되고, 옷이 사람이 되는 이 기이한 연금술의 시대에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토록 갈구했던 타인과의 완벽한 결합은 타인의 몸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견뎌내는 이 묵묵한 직물의 품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든 옷은 착용자의 고고학이다. 소매 끝에 새겨진 마모는 내가 세상을 향해 뻗었던 손짓의 횟수이며, 카라 부분의 옅은 주름은 내가 삼킨 한숨의 깊이다. 한 인간이 죽고 나면, 그를 기억하는 것은 거창한 비석이 아니라 그가 평생을 함께 숨 쉬며 나누어 입었던 한 자루의 옷이다. 옷장에 걸린 옷들은 주인이 사라진 후에도 착용자의 형상을 기억하며 한동안 서서히, 그러나 아주 기품 있게 죽어간다.


어둠이 깊어지자 가디건의 실타래가 내 몸의 템포에 맞춰 가만히 메트로놈처럼 진동한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 말을 건네지 않는 존재, 오직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 나의 비틀거림을 받쳐주는 존재.


옷이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아득하고 차가운 우주 속에서 인간은 단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


해가 기울고 방 안에 짙은 음영이 드리우면, 비로소 사물과 인간을 가르던 선명한 경계도 아득해진다.

돌아보면 인간은 늘 누군가를 구원하고자 했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구원받기를 갈망해 왔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에게 건네는 구원은 얼마나 자주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마는가.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가졌고, 너무 쉽게 오해하며, 서로의 깊은 고독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쳐 돌아서곤 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구원한 것은 말이 없는 직물들이었다.

소매를 접어 올리고, 옷깃을 여미고, 낡은 코트의 버튼을 잠그는 그 지극히 단순한 행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진정한 다정함이란 거창한 구호나 닿지 않는 약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피부에 가장 가까이 밀착하여 나의 온기를 흩어지지 않게 모아주는 그 미세하고 묵묵한 무게감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침이 오면 나는 다시 옷장 문을 열 것이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던 옷들은 또다시 내 몸의 능선을 따라 흐르며 한 사람의 온전한 형태를 완성해 줄 것이다. 내가 세상의 바람 속에서 휘청거릴 때 나보다 먼저 바람을 맞아서 줄 것이고, 내가 슬픔으로 여위어 갈 때 조용히 자신의 품을 줄여 나를 밀착해 안아줄 것이다.


옷이 사람이 된 시대. 그것은 사물이 인간의 지능을 닮아갔다는 첨단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침내 인간이 사물의 묵직한 침묵을 배우고, 사물이 인간의 쓸쓸한 체온을 품어 안으며, 이 어두운 우주 속에서 서로의 슬픔을 나누어 지게 되었다는 아주 오래된 신화의 완성이다.


이제 나는 외롭지 않게 밤을 맞이한다. 내 어깨를 감싼 단단하고 다정한 실들의 궤적 속에서, 나는 비로소 편안히 숨을 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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