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로 완성되는 존재의 역설
세계는 다디단 감각으로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젖샘에서 흘러나오는 숭고한 달콤함은 생명이 최초로 경험한 존재의 긍정이자, 번성하리라는 나지막한 약속이었다. 그리하여 탄생의 순간부터 본능적인 갈망이 시작된다. 그것은 허기를 달래는 단순한 영양의 섭취가 아니라, 사방이 어둡고 차가운 비존재의 깊은 바다 속에서 존재가 무사히 받아들여졌음을 확인하려는 눈물겨운 허우적거림이다.
그러나 결정(結晶)이 된 설탕을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투명하고 정교하게 깎아지른 백색의 다면체. 설탕은 무결한 고체로 서 있을 때조차 언제나 부서질 듯 아슬아슬한 고독을 품고 있다. 그것은 본래 사탕수수의 검푸른 줄기 속에서, 사탕무의 묵직한 뿌리 깊은 곳에서 태양의 빛과 땅의 습기를 머금고 유유히 흐르던 액체였다. 생명의 활력으로 수액 속에 살아 숨 쉬던 영혼은 거친 증발과 불길의 정제를 거치며 비로소 단단한 육신. 즉, 결정이라는 형태를 얻는다.
형태를 얻는다는 것은 곧 개별자가 된다는 뜻이며, 개별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나머지 전체로부터 단절되는 형벌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결정이 된 설탕의 고독은 바로 이 모순된 성질에서 비롯된다. 설탕의 존재 이유이자 본질은 ‘달콤함’이라는 감각을 타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완전한 형태를 고수하고 단단하게 다물어진 입자로 존재하는 한, 설탕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본질인 달콤함을 나누어줄 수 없다. 자기 형태를 지켜내는 동안 설탕은 그저 사각거리는 백색의 모래알에 불과하며, 스스로를 가둔 냉정한 감옥일 뿐이다.
설탕이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본질을 드러내려면, 오직 단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찬란하게 스스로를 녹여 없애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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