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릿한 수직의 코드와 혀끝의 허기

수직의 비와 붉은 침묵 사이

by구시안
구시안 코드.png

비릿한 수직의 코드와 혀끝의 허기.

언어는 본래 땅을 밟고 서 있지 않다. 그것은 중력을 흉내 내며 떨어지는 비릿한 수직의 코드, 즉 하늘과 바닥 사이에 그어진 차가운 가로지름이다. 빗줄기처럼 정수리를 관통하는 문장들은 언제나 은빛의 날카로운 선으로 떨어져 내리지만, 피부에 닿는 순간 선명한 비린내를 풍기며 스러진다.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그 찰나의 지점에서 감각은 비로소 자신의 생존을 증명한다.


수직의 코드가 찍어 누르는 세계는 냉정하다. 0과 1, 단어와 단어 사이의 막막한 공백, 절제된 표상들이 빽빽하게 얽혀 만든 이 선형(線形)의 지붕 아래서 부단히 유기물로서의 자아를 수혈받고자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관념을 번역해 낸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논리의 뼈대는 차갑고 메마를 뿐이다. 그때 고통스럽게,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혀끝에 사기처럼 맺히는 허기다.


혀끝의 허기는 결코 단순한 생물학적 욕구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단어로 고착되지 않은 세계를 삼키려는 존재론적 갈증이자, 체온을 지닌 언어를 향한 가장 근원적인 형이상학적 굶주림이다.


만지고, 맛보고, 들이쉬지 않고서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코끝을 스치는 젖은 흙냄새, 입안에서 부서지는 과육의 텁텁한 단맛, 손가락 끝을 파고드는 직물의 서늘한 감촉—이 야생의 감각들은 수직으로 낙하하는 미끈한 기호의 질서에 끊임없이 균열을 낸다. 추상화된 관념이 세계를 설명하려 할 때, 혀끝을 적시는 비릿한 혈액의 맛은 설명될 수 없는 삶의 실재(實在)를 들이밀며 질문을 던진다.


“너는 지금 이 순간, 진정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구시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자각(自覺). 나의 시들지 않는 문학이라는 꽃잎을 위해. brunch + 354日.

1,68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2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20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3화마찰을 잃어버린 피부의 고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