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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의 형태

사라진 것들이 빚어낸 여백에 대하여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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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부피와 무게를 지니지만, 진정으로 세계를 채우는 것은 사라진 것들이 남긴 윤곽이다. 빈자리는 단순한 무(無)가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형태를 품은 침묵이며, 손에 잡히지 않으나 눈이 멀 정도로 선명한 역설의 실루엣이다.


오랫동안 사람이 머물다 떠난 방에 들어가 보면 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가구가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마루의 바닥면은 유독 짙고 고요하다. 창으로 햇살이 비쳐들 때, 그 빈 공간은 허허로움이 아니라 누군가의 온기와 체온이 수십 년 동안 깎아 만든 정교한 조각상처럼 다가온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상실이라는 보이지 않는 그릇을 빚는 숙명을 안고 살아간다. 계절이 바뀔 때 나뭇잎이 떨어진 자리에 생기는 빈틈이나, 오랜 연인과 이별한 뒤의 가슴 한구석에는 보이지 않는 뼈대 같은 것이 세워진다. 그 뼈대는 부서지지 않으며, 오히려 시간의 풍화 속에서 더욱 단단한 밀도를 지니게 된다.


조각가들이 돌을 쳐내어 형상을 만들 때, 진정한 예술은 돌을 깎아내는 행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겨진 형태가 품어 안을 공기의 무게를 가늠하는 데 있다.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인간이 지닌 기억의 깊이는 무엇을 손에 쥐었는가로 측정되지 않고, 무엇이 사라진 자리를 어떤 무늬로 견뎌내고 있는가에 따라 판가름 난다.


부재는 결핍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남기고 간 가장 완벽하고 영원한 서명이다. 저녁 노을이 지고 어스름이 방 안을 채울 때, 사물들이 지닌 그림자는 저마다의 형태로 길게 늘어진다. 채워지지 않은 그 그늘 속에서 삶의 진정한 부피가 드러난다. 보이지 않기에 더 오래 머무는 것들, 사라짐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여백의 안쪽에서, 우리는 깊고 무거운 침묵의 형태를 끌어안은 채 내일을 향해 걸어간다.


어둠은 사물의 경계를 물러나게 하고, 오직 부재의 형태만을 뚜렷하게 남긴다. 눈을 감으면 되살아나는 목소리들, 닿지 않는 손길의 온기, 그리고 결코 도달하지 못한 질문들이 방 안의 여백을 빼곡하게 채운다. 가득 차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비어버린 순간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만의 울림을 얻는 법이다.


돌아보면 삶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은 언제나 쉼표와 마침표 사이, 말해지지 않은 빈공간에서 태어났다. 언어가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감정이 있듯, 존재가 다한 자리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상실을 슬퍼하는 대신, 빈자리가 건네는 그 침묵의 무게를 가만히 가슴으로 받아낸다.


채움으로 가득 찬 세상은 눈부시지만, 그 빛 뒤편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여백이야말로 삶을 부서지지 않게 받쳐주는 기둥이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그 무형의 윤곽을 쓸어내리며, 고요히 다음 계절을 향해 나아간다. 사라진 모든 것들은 떠난 것이 아니라, 가장 완전한 형태로 우리 내면에 단단히 뿌리내렸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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