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리 그린 : Celery Green

아직 마르지 않은 생의 빛

by구시안
셀러리그린.png


초록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오래 살아남은 빛이고, 연두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몇 번의 계절을 지나온 얼굴이다.


Celery Green.


싱싱함을 과시하는 색이 아니라 싱싱함이 지나간 자리에서조차 생을 포기하지 않는 색에 가깝다. 갓 꺾인 줄기의 단면처럼 맑으면서도 어딘가 탁하고, 햇빛을 오래 머금은 잎맥처럼 밝으면서도 그 안쪽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늘이 들어 있다.


나는 이 색을 보면 새벽의 부엌을 생각한다.

아직 누구도 말을 시작하지 않은 시간, 창문으로 들어온 희미한 빛이 도마 위에 놓인 셀러리의 굴곡을 천천히 훑고 지나가는 순간. 물에 씻긴 채소에서는 흙냄새와 물냄새가 동시에 올라오고, 칼날이 줄기를 가르면 안쪽에 숨어 있던 연한 초록이 잠깐 드러난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평범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색보다 먼저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사람도 그런 색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젊음은 대체로 자신이 젊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붉은 것은 붉다고 말하고, 푸른 것은 푸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을 통과한 것들은 자신을 선명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사랑도 그렇고, 슬픔도 그렇고, 사람이 사람을 떠나보낸 뒤 남겨진 마음도 그렇다. 처음에는 검거나 붉거나 아주 짙은 색으로 타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색이 된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농도를 낮추면서, 스스로를 견딜 만한 색으로 바꾸어 간다.


Celery Green에는 그런 시간의 완충 작용이 있다.

너무 밝아서 상처를 감추지도 않고, 너무 어두워서 상처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다친 잎이 햇빛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처럼, 한 번 꺾인 마음이 다시 세상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데 필요한 정도의 빛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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