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이면을 적시는 은빛
달빛은 고요히 가라앉는 유백색의 침전물처럼, 하루의 허기와 소란을 남김없이 지워내며 골목마다 스며든다. 낮 동안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이름과 각진 모서리로 존재하지만, 푸르스름한 밤의 기운이 깃드는 순간 그것들은 단단한 껍질을 벗고 서서히 몽환적인 음영 속으로 녹아내린다. 장맛비가 지나간 뒤의 젖은 마당이나, 오래된 한옥의 마루 끝에 고이는 달빛은 단순한 빛의 파장이 아니라, 시간의 자락이 고스란히 응축된 서늘하고도 부드러운 체온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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