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트레킹
7월 장마를 끝으로 우리나라는 폭염에 휩싸였다. 지구 온난화로 바다가 뜨거워져 해수면 온도가 상승했다. 대륙성 고기압인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동시에 우리나라 상공을 감싸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열섬현상이 나타났다.
어르신들은, 살다 살다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르신다. 38도의 더위는 처음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쉬기도 힘들어 에어컨 없이는 견딜 수 없다. 뉴스에서는 에어컨 사용 급증에 따른 변압기 과부하로 아파트 전체가 정전되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날씨가 더워졌는데 또 에어컨을 빵빵 켜자니 온난화가 더 심해질까 봐 두렵고 전기세 폭탄도 걱정된다.
이런 날은 계곡 트레킹이 답이다. 고원길 걷기 모임은 진안 운장산 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갈거계곡을 걷기로 했다. 출발 전, 운장산 자연휴양림 구내식당에서 닭볶음과 닭백숙을 먹고 계곡을 따라 오르기로 했다. 에어컨이 시원한 방이 아니라 야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이른 점심을 먹고 계곡으로 들어섰다. 계곡 바람이 아주 시원했다.
물가 옆으로 조심스럽게 걷는데 꾸미가 다가와 나를 물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이건 계곡 트레킹이 아니지. 들어와 봐.”
한순간에 등산화와 바지가 젖어버렸다. 처음 물에 젖기가 힘들었지 그다음부터는 시원한 물길만 따라 물속으로 걸었다. 돌멩이에 이끼가 끼어있는 돌도 있어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이 층 폭포가 있는 소를 만났다.
“여기서 잠깐 쉬어갑시다.”
깊은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물이 얕은 위쪽 소에 앉았고, 수영을 잘해 깊은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래쪽 소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몇 명이 물로 뛰어들어 머리만 밖으로 내고 헤엄쳤다.
“아이고, 형님들 모두 개헤엄을 치시네요. 하하하~~”
위쪽에서는 싸 온 간식을 나눠 먹으며 아래쪽 사람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때 위쪽에서 간식을 먹던 내가 말했다.
“선애야 네가 수영이 뭔지 좀 보여줘 봐”
키 크고 날씬하고 예쁘고 성격 좋은 선애는 고원길의 미모 담당이다. 간식을 먹고 있던 선애가 조용히 일어나 아래 소로 내려갔다. 물속으로 들어가 우아하게 자유형과 배형으로 소를 몇 바퀴 돌았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와우, 수영은 멋진 폼으로 해야 제멋이지.”
수영을 잘하는 분은 물줄기를 타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고, 명순 형님과 성철 형님은 폭포 아래에 앉아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즐겼다.
수연이 플라스틱 통에 담긴 황도 복숭아를 꺼냈다. 황도 복숭아는 달콤하고 맛있었다. 한 통은 위쪽에서 먹고, 다른 한 통은 아래쪽을 향해 물에 띄우며 말했다.
“여기 보세요. 복숭아가 내려갑니다. 수박도 갑니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복숭아와 수박은 폭포 물줄기를 따라 아래쪽 소로 흘러 내려갔다. 진수 형님이 헤엄을 쳐서 떠내려오는 복숭아와 수박 통을 잡았다. 보고 있던 위쪽과 아래쪽 사람들은 “와”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성공이다.”
신이 난 위쪽 사람들은 말했다.
“또 뭐 보낼 것 없어? 빨리 좀 찾아봐.”
모두는 주섬주섬 가방을 찾았다. 어떤 분이 비닐봉지 속에 들어있던 사탕 봉지를 흔들어 보이더니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냈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먹는 간식은 더 시원하고 맛있었다. 우리가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걷기 모임에 처음 온 분이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있었다. 그 모습이 하필 장난기 많은 선애 눈에 딱 띄었나 보다. 선애가 두 손에 물을 담아 조심조심 뒤로 돌아가더니 몰래 목덜미에 뿌렸다. 그분은 깜짝 놀라 일어섰지만 이미 옷은 물에 젖어버렸다. 휴대폰과 자동차 키를 넣은 가방은 모두 저쪽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부터는 위쪽과 아래쪽 사람들 구분 없이 서로를 공격하는 본격적인 물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물에 젖기 싫어 조금 떨어진 바위에 앉아 사람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쳐다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에게까지 물 폭탄이 날아왔다. 처음엔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물 공격을 피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피하는 게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고, 나도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공격당한 사람들은 악을 쓰며 피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나처럼 역공격을 했다.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 무리는 대부분 물에 젖지 않고 얌전히 앉아있는 사람들을 더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처럼 정신없이 물놀이를 하다 보니 2025년 방콕의 쏭크란 (물 축제)이 생각났다. 그때 아무런 준비 없이 마히돌대학교 물 축제에 가서 신나게 놀고, 온몸이 흠뻑 젖어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휴대폰을 켜니 작동이 안 돼 가슴 철렁했었다. 오늘도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내년엔 물총을 가져와 더 적극적으로 공격해야겠다.
계곡에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여름은 뜨거워야 여름이다. 여름엔 여름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햇볕이 뜨거워야 알곡이 여물고, 과일도 쑥쑥 크고, 맛있게 익어갈 것이다. 햇빛이 강할수록 꼬투리가 잘 여물고, 일조량이 많아야 기름 품질이 좋다는 참깨도 불볕더위에 잘 여물어 가고 있다. 우리는 뜨거운 여름을 잠깐 피하면 된다.
온몸이 흠뻑 젖어도 어른들에게 혼날 일 없는 60대 중반에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물장난을 하며 신나게 놀았다. 노년의 마음에도 아직 순수한 동심은 살아있었나 보다. 맑고 차가운 계곡물에 빠지는 순간 60대의 나이와 온난화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린 시절의 내가 물장구치며 뛰어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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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진안고원길 이어걷기가 시작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