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우이도 섬 트레킹
후텁지근한 장마철이다.
비구름은 이곳저곳을 흘러 다니며 하루에도 몇 번씩 맘 내키는 곳에 소나기를 퍼붓고 있다. 어젯밤에도 장맛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아침이 되었지만, 고원길 모임에서는 취소 문자가 없다. 문자가 없으면 비가 와도 떠난다는 뜻이다.
오늘은 멀리 신안군 우이도로 2박 3일 섬 트레킹을 가는 날이다.
오래전 <홍어 장수 문순득 표류기>를 읽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한국판 하멜을 만난 것이다. 하멜은 1653년, 우리나라 제주도에 표류했다가 13년 만인 1666년 일본으로 탈출하고 1668년 네덜란드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썼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조선 순조 때 우이도에 살던 홍어 장수 문순득의 표류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실학자인 정약전과 홍어 장수 문순득이 전라도 신안군에 있는 조그만 섬 우이도에서 어떻게 만났을까? 궁금한 나머지 두 사람의 발자취를 찾아보았다.
정약전은 1801년(순조 1년) 천주교 신유박해로 우이도(소흑산도)에 유배를 오게 되었다. 1802년 우이도에 살던 홍어 장수 문순득은 흑산도에서 홍어를 사 나주 영산포로 팔러 가다 풍랑을 만났다. 그는 일본 오키나와~필리핀 루손섬~마카오~청나라 광동, 난징, 베이징을 거쳐 1805년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는 표류하며 정착했던 곳에서 현지어를 익히고 기후, 문화, 건축 양식, 선박구조, 생활풍속, 의상 등을 자세히 기록해 3년 2개월 만에 우이도로 돌아왔다. 상인의 눈으로 바라본 해외 생활 경험이 실학자 정약전의 눈에는 경이로웠을 것이다.
정약전은 문순득의 표류기를 전해 듣고 1805년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표류기인 <표해시말>을 썼다. 1814년에는 장창대라는 흑산도 청년의 도움을 받아 한국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도 저술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816년 유배생활 16년 만에 유배지인 우이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문순득은 1801년 제주도로 표류해 온 어부 다섯 명이 말이 통하지 않아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갔다. 통역해서 필리핀 사람임을 알아냈고 어부들은 제주도에 갇힌 지 9년만인 1809년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이도는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섬이라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으나 너무 멀고 뱃멀미가 심해 엄두를 못 내고 있었던 차에 기회가 온 것이다.
비 내리는 이른 아침 등산 가방을 메고, 우산을 쓰고 카풀 장소로 나갔다. 2시간 30분 만에 목포 연안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비가 내린 탓인지 일정을 취소한 길동무들이 많아 인원은 16명뿐이었다. 모두 아침 일찍 집을 나왔기 때문에 여객선 터미널 인근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배를 타기로 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근대역사문화 공간인 옛 일본영사관과 1879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 건물, 적산가옥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개항기 항만의 역사와 일제의 수탈, 민족 저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1977 남도정식> 식당에서 푸짐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멀미약도 먹었다.
장마철이라 배가 뜨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배를 탈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방으로 들어가 앉거나 누워서 수다를 떨었다. 다행히 멀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시간 30분 만에 우이 2구 돈목 마을 선착장에 도착했다. 민박집 아저씨가 경운기를 몰고 나와 있었다. 2박 3일 동안 섬에서 지내며 먹을 간식과 생수를 경운기에 실어 보냈다.
돈목 마을 우림장 민박 집에 짐을 풀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저녁 밥상에 커다란 꽃게찜이 푸짐하게 나왔다. 섬 여행을 다니며 느낀 점은 모든 밥이 맛있다는 것이다. 꽃게찜은 먹고 더 달라고 하면 계속 주셨다.
“남편이 잡은 것이니 얼마든지 드세요. 오늘이 마지막 꽃게입니다. 금어기가 시작되어 이제 잡을 수 없어요.”
저녁을 먹고 나니 이슬비가 내렸다. 우산을 들고 돈목 해수욕장으로 갔다. 가늘고 고운 모래 해수욕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해넘이가 아름다운 곳이라 했다. 모두 신발을 벗어 한 곳에 모아두고, 우산을 들고 모래밭을 걸어 풍성사구(모래사구)로 갔다. 해수욕장의 끝부분 산허리에는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 놓은 모래 언덕이 있었다. 모래 언덕이라 했는데 내 눈에는 모래 산처럼 높아 보였다. 해수욕장의 고운 모래들이 바닷바람을 타고 산 중턱으로 가 앉았나 보다. 섬 속의 사막에 온 것 같은 광경에 감탄사를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모래 사구는 2006년 유지태 주연의 <가을로>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슬픈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우이도 돈목 마을 총각과 성촌마을 처녀는 남들의 눈을 피해 높고 푸른 모래 언덕에서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총각이 거센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고, 슬픔을 견디지 못한 처녀는 총각을 따라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 뒤 사람들은 이 모래언덕에 부는 바람을 죽은 총각의 숨결로, 흩날리는 모래를 처녀의 몸짓으로 여겼다. 바람이 모래를 실어 나르며 언덕의 모양을 바꿀 때마다 두 사람이 바람과 모래가 되어 영원히 밀어를 나누고 있다고 믿고 있단다.
모래사구를 보고 안개 낀 바닷가에서 어린아이처럼 놀고 있을 때 봉연이 말했다.
“모두 일렬로 서서 바다를 보세요. 오른손으로 우산을 드세요. 이제 왼발을 옆으로 드세요.”
“안돼, 넘어져. 빨리 찍어”
그때부터 우리의 웃음보는 터져버렸다.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이번엔 규리가 말했다.
“일렬로 서서 앞을 향해 이크애크를 하겠습니다. 동작을 크게 하세요.”
이크애크는 춤이 아니고 우리 전통무술 택견에서 하는 기합 소리라고 했다.
“오른발을 높이 올려 앞으로 한 발 다시 왼발을 높이 올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우리의 흥은 최고조에 달했다. 지시어는 잊어버리고 모두 신났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이크애크만 열심히 외치자 맨 뒤쪽에 있던 사람이 소리쳤다.
“가. 앞으로 가면서 해. 가라고”
“앞으로 가라고? 하하하~~~~”
또다시 터져버린 웃음을 아무도 어찌하지 못하고 몸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무아지경으로 놀고 있을 때 양동이를 들고 웃으며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뭐 잡으러 가세요?”
“조개 캐러 갑니다.”
띠밭 너머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언덕길엔 삐삐(삘기) 꽃이 하얗게 피어있었다.
다음날 밥상에 이곳에서만 잡힌다는 하트모양의 꽃조갯국이 올라왔다. 백합도 아니고 바지락도 아닌데 시원하고 맛있었다. 어제 바닷가에서 놀 때 조개 캐러 가던 아주머니가 캐오신 거라 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왜 이렇게 맛있냐고 한 마디씩 했다. 심지어 집에서는 아침밥을 안 먹는다는 분이 한 그릇 더 먹기도 했다. 밥을 먹는 동안 아주머니는 옆에서 우리가 추가한 반찬을 부지런히 가져다주셨다.
“저는 이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곳에서 결혼해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모든 음식 재료는 여기서 나오는 거로 해요. 생선은 남편이 배 타고 나가 잡고 채소는 내가 밭에서 가꾼 거예요. 섬에 살면 여자들이 하는 일이 많아 힘들어요.”
아주머니 얼굴은 바닷바람에 검게 타 주름살이 자글자글했고, 갯벌에 굳은살이 박인 손은 투박했지만, 미소만큼은 꽃처럼 화사했다.
맛있는 아침을 먹고 달뜬 몰랑길을 넘어갔다. 달이 뜨는 언덕길은 예리, 진리, 돈목 마을의 옛 주민들이 언덕을 넘어 마실 다니던 애환이 서린 산길이자 둘레길이란다. 몰랑이라는 말은 산봉우리나 언덕을 뜻하는 남도 사투리라 했다. 그 옛날 정약전과 문순득도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래전 쌓아놓은 아름다운 돌담길 위로 초록 담쟁이가 힘차게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문순득 생가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사장님은 문순득의 5대손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문순득의 후손답게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온 밥상에는 흑산 홍어도 푸짐하게 나왔다. 식혜와 막걸리는 모두 사장님이 직접 엿기름과 누룩을 띄워서 만들었단다. 귀한 막걸리를 한잔 마셨다.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
점심을 먹고 둘러본 아담한 산자락의 정약전 유배지 터는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경기도 마재에 가족을 두고 홀로 외딴섬 우이도로 유배 와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해양생물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고, 바카라을 썼다고 한들 마음이 편했을까?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집안의 아들이었고, 한 아내의 지아비였으며, 어린 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225년 전 정약전의 마음을 생각하니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우이도에서 가장 높은 상산봉에 올랐다. 이곳에 서면 다도해의 아름다움이 장관이라 했는데 안개가 끼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길동무들은 이런 안개 낀 날씨를 곰탕이라 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니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보려 했으나 날씨가 여의치 않다. 아마도 한 번 더 오라는 뜻인가 보다 했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마 문순득과 정약전의 활동 무대를 직접 걸어보고, 아름다운 모래사구를 보고, 드넓은 바닷가에서 맘껏 뛰어놀고, 달뜬 몰랑길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우이도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배를 타러 가는 길, 자꾸만 아쉬워 뒤돌아보았다. 우이도에 발자국이라도 한 번 더 찍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탄 배는 돈목항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7월 4일(2박 3일): 목포 연안여객선 터미널~우이 2구 돈목마을~예리~달뜬 몰랑길~우이 1구 진리~문순득 생가~정약전 유배지~상산봉~돈목마을
우림장 민박: (061) 261-1860. 2025년 6월 2일. 6시 내 고향에 방송된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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