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를 만난 뒤로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행사를 열어 보고 싶었다.
마침 이전 사서 선생님이 사 두고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그림엽서가 한 뭉치 남아 있었다. 언젠가 활용해야지 하고 보관만 하던 것들이었는데, 리아를 만나고 나니 비로소 쓰임이 떠올랐다.
엽서 앞면에는 마음에 드는 문구를 쓰고, 뒷면은 자유롭게 색칠하는 활동이었다. 색연필과 사인펜, 반짝이펜, 스티커를 바카라상마다 나누어 놓고, 글씨를 쓸 수 있도록 붓펜과 볼펜도 함께 준비했다. 한쪽에는 캘리그래피 바카라을 펼쳐 두었다. 따라 써도 좋고, 자기만의 글귀를 적어도 좋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떠들며 뛰어다니던 아이들도 신기하게 엽서를 펼치면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조용히 색을 고르고, 문장을 따라 쓰고, 서로의 그림을 구경하며 웃었다.
도서관도 한결 차분해졌다.
그때였다.
늘 구석 자리에만 앉아 있던 리아가 엽서 한 장을 집어 들고 데스크 앞으로 걸어왔다.
"어머, 리아도 참여하는 거야? 좋아, 좋아. 어떤 그림을 그릴지 기대되는데?"
리아는 아무 말 없이 옅게 미소만 지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성공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이런 시간을 만드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늘 구석에 숨어 있던 아이들이 잠깐이라도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와 주는 것. 그 작은 한 걸음이면 족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리아는 색칠하던 엽서를 조심스레 들고 도서관을 나서려 했다.
"리아야, 잠깐."
리아가 멈춰 섰다.
"다 못 그렸어도 간식은 가져가. 이렇게 정성스러운 그림은 미완성이어도 선물을 줘야지. 출석 선물이야."
리아가 나를 올려다봤다.
"... 그래도 돼요?"
떨리는 듯 조심스러운 리아의 목소리였다.
"그럼. 물론이지."
리아는 작은 과자 하나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리아는 사흘째가 되어서야 엽서를 완성했다. 앞면에는 아름다운 여성을, 뒷면에는 예쁘고 화려한 꽃으로 채웠다.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리아답네.'
엽서를 넘기려던 순간, 구석에 연필로 흘려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이 좋아.'
너무 흐려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짧은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림을 좋아한다는 말일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좋다는 뜻일까. 아니면, 누군가 자신의 그림을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나는 엽서를 한 번 더 바라보다가, 데스크 앞 게시판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걸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