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예 도서관 안에 작은 매점을 열었다.
이벤트를 서너 가지 준비해 두고, 참여한 학생들이 간식을 하나씩 고를 수 있게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떼를 지어 도서관으로 몰려왔다.
어떤 사서 선생님은 도서관이 시끄러워지고 어질러지는 것이 싫어 행사를 최소한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점심시간만큼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도서관이 좋았다.
아이들은 바카라을 읽다가도 친구와 수다를 떨고, 간식을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쏟아냈다. 덕분에 어느 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동아리가 새로 생겼는지, 어느 선생님이 재미있는 이벤트를 준비하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됐다.
잘 정돈된 도서관에서 바카라을 매개로 아이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집에서도 이렇게 웃는 엄마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한없이 다정한 사서인데, 집에만 가면 자꾸 목소리가 커졌다. 사소한 일에도 인상을 쓰고, 아이들을 다그치고, 남편에게 날이 선 말을 내뱉곤 했다.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 나일까.
아이들에게 웃어 주는 사서도 나였고, 집에서 지쳐 있는 엄마도 나였다. 그 사실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위안이 되다가도, 가끔은 내가 두 사람으로 나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무렵부터였다.
도서관 구석 끝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있었다.
가장 안쪽 서가 옆 작은 바카라상.
일부러 들어가 보지 않으면 학생이 앉아 있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한 자리였다.
며칠째 그곳에는 늘 같은 아이가 앉아 있었다.
바카라은 펼쳐 두었지만 읽지는 않았다. 대신 커다란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색연필을 움직였다.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말 한마디 없이 그림만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종이 울려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뒤, 나는 의자를 정리하며 서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직 안 갔니? 지금 종 쳤어. 얼른 교실로 올라가야지."
아이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 네."
붉어진 얼굴로 급히 색연필을 주워 담는 아이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황리아.
바카라상 위에는 48색 색연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미처 다 완성하지 못한 그림 한 장이 펼쳐져 있었다.
잠깐 스쳐 본 것뿐인데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작품인데.'
"리아는 그림을 정말 잘 그리네. 너무 집중해서 종 친 것도 몰랐구나? 그럴만하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그림을 가방에 넣었다.
"내일 또 와서 그려. 내가 그림 보는 눈은 없지만… 정말 좋다, 네 그림."
"... 감사합니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를 남긴 채 리아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교실로 향했다.
문이 닫힌 뒤에도 나는 한동안 리아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날 이후, 점심시간만 되면 나는 무심한 척 그 자리부터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