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 가는 게 싫었다.
동생과 엄마가 웃고 떠들던 집은 이제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면 불 꺼진 거실이 나를 맞았다. 어둡고 조용한 집은 적막만이 남아 있었다.
친구들과 코인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인생 네 컷을 찍으며 웃고 떠드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갈 곳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학교에 가는 것도 싫었다.
아빠는 내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밤늦게 들어와도 화를 내기는커녕 내 눈치부터 살폈다.
"이제 오니? 위험하니까 조금만 일찍 다니면 좋겠다."
"아빠나 일찍 들어와."
툭 쏘아붙이면 끝이었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침에도 침대에서 미적거리고 있으면,
"이연아, 학교 가야지. 아빠 먼저 출근한다."
그 말이 전부였다. 더 이상 재촉도, 강요도 없었다.
나는 자유로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고, 누군가 알려줬으면 싶었다. 알려준다고 곧이곧대로 들을 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학교에만 가면 또 다른 답답함이 기다렸다. 왜 늦었는지, 공부는 따라가고 있는지, 누구와 노는지…. 매일 누군가에게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다음에도 지각하면 아빠와 상담하겠다고 했다. 아빠가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아마 또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겠지. 어차피 나한테는 한마디도 못 할 거면서.
바보 아빠.
숨 막히는 학교에서 도서관만은 달랐다.
사서선생님은 이것저것 캐묻지 않았다. 대신 자꾸 뭔가를 내밀었다. 과자 하나, 음료수 하나, 작은 간식들.
밖에서도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손길은 달랐다.
'이거 해.'
가 아니라,
'한번 해볼래?'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고, 기다려 주는 사람.
그래서 나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묻지도 않은 집안 이야기를 슬쩍 꺼내기도 하고, 도서관 이벤트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간식도 누구보다 열심히 받아 갔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매일 도서관 구석에 앉아 정성스레 글씨를 쓰고 있었다.
재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재미없다고도 말할 수는 없었다.
삐뚤빼뚤하고 들쭉날쭉했던 글씨가 조금씩 가지런해지는 걸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괜찮아졌다.
'내가 이렇게 공을 들이면 글씨도 달라지는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인생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아주 막연한 기대가 마음속에 조용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