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자 도서관도 분주해졌다. 세계 도서관의 날을 맞아 행사를 준비하느라 도서부 아이들은 바카라 표지를 오리고, 퍼즐을 만들며 여기저기서 질문을 쏟아냈다.
"퍼즐 조각이 되게 자로 요리조리 잘라봐~"
예쁘거나 인상적인 바카라 표지를 프린트해 두꺼운 도화지에 붙이고 코팅까지 마친 뒤, 도서부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선생님, 조각은 몇 개나 만들어요?"
"도형이 다각형이어도 돼요?"
"야! 연결이 되게 해야지. 이게 뭐야~"
간단한 작업인데도 질문은 끊이지 않았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웃었다.
'아휴, 내가 혼자 할 걸 그랬나.'
분주한 하루가 지나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어김없이 이연이가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말없이 자리에 앉은 아이는 한 획, 두 획. 무심한 표정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껏 따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정성대신 투덜거림이 시작된다.
"선생님, 도대체 이 재미없는 걸 왜 하는 거예요? 팔만 아파요. 요즘 누가 손글씨 써요?"
"맨날 와서 글씨라도 예뻐지면 좋지 뭐."
"에이 그게 뭐예요~"
"요즘은 AI가 워낙 잘하잖아. 그래서 오히려 손으로 정성껏 하는 게 더 귀해질 수도 있어. 예쁜 글씨로 편지도 써주고, 택배 보낼 때 이름 하나만 예쁘게 써도 느낌이 다르잖아."
이연은 피식 웃었다.
"참나. 별 이상한 말로 사람을 꼬드기시네."
"통했나?"
"조금?"
"자, 그럼 간식."
볼멘소리를 하기 전에 간식 두 개를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이벤트는 언제 시작하는 거예요? 하긴 할 거예요?"
"언젠간 할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그때였다. 도서관 문이 살짝 열리더니 지수가 울먹이는 얼굴로 들어왔다.
"선생님, 아직 문 안 닫으셨네요? 어? 이연아, 너 여기서 뭐 해?"
지수는 이연 앞에 놓인 노트를 슬쩍 내려다봤다.
"우와, 너 글씨 연습해?"
이연은 괜히 민망한 듯 노트를 손으로 툭 덮었다.
"아, 뭐... 선생님이 부탁한 게 있어서."
그러더니 손에 들고 있던 간식을 내밀었다.
"먹을래? 선생님이 두 개 주셨어."
"아... 아니야. 난 괜찮아."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손톱만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영 심상치 않았다. 뭐든 열심히, 잘하고 싶어 하는 아이. 그래서 더 쉽게 불안해지는 아이였다.
"선생님... 저 요즘 너무 힘들어요. 학원을 바꿨는데 선생님이 너무 엄하고 숙제가 끝이 없어요."
쉬는 시간마다 들르고, 점심시간에도 봉사 시간이 아니어도 와서 숙제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였다. 그런데 4월이 된 뒤로는 통 보이지 않았다. 궁금했는데 먼저 찾아와 털어놓아 주니 반갑기만 했다.
"아이고, 우리 지수. 그래서 요즘 통 안 보였구나? 학원은 갑자기 왜 바꿨어?"
"엄마가 이제 고등학교 준비해야 한다고 국영수 통합학원으로 옮기래요. 전에 다니던 학원이 더 좋았는데…."
지수의 목소리가 금세 작아졌다.
잠자코 듣고 있던 이연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나도 처음 여기 와서는 재미 하나도 없었어. 뭐든 처음이 어려운 거지. 하다 보면 또 별거 아니더라."
나는 피식 웃으며 이연을 바라봤다.
"어쭈? 우리 이연이가 뭘 좀 아는데?"
이연은 괜히 머쓱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연이 말이 맞아~ 그러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달달한 거 먹으면서 마음부터 좀 가라앉혀. 자, 이건 지수 특별 보너스!"
간식을 건네받은 지수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번졌다.
"우리 지수, 도서관에 자주 못 오는 건 아쉽지만 공부하느라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지."
"힝... 저도 도서관에 자주 놀러 오고 싶어요."
"시간 날 때마다 와. 언제든 환영이야. 온 김에 필사 한 줄이라도 쓰고 갈래?"
지수는 필사 노트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쉬운 듯 웃었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요. 다음에 꼭 할게요."
총총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음엔 웃는 얼굴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