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이 시작되다

by수박씨

3월에 발령을 받은 터라 운영계획서와 수서목록부터 시급했다. 3월부터 12월까지 어떤 행사를 진행할지, 장서점검은 언제 할지, 도서부 동아리에서는 어떤 활동을 할지. 이 모든 계획을 4시간 근무 안에 끝내야 했다.

선생님들의 설명 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운 시간. 불이 꺼진 도서관 문을 열어 불을 켜고, 대출일자와 반납일자판의 날짜를 넘기고, 전자시계와 컴퓨터를 켠다. 잔잔한 음악까지 흐르면 비로소 오늘의 준비가 끝난다. 살포시 잠겨 있던 도서관 문을 연다.

운영계획서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벌써 단골들이 생겼다. 마음이 쓰이면서도 고마웠다.

도서관의 대출과 반납, 바카라 정리는 도서부 아이들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하교 후 틈틈이 도와주고 있었다. 이곳은 그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선생님, 오늘 바카라이 왜 이렇게 많아요?"

바카라수레에 바카라이 한가득 쌓여 있으면 자기 순번이 아니어도 와서 샤라락 정리해 주고 사라지는 우렁각시들이 있었다. 모두 3학년 언니들이었다. 얼마나 듬직한지.

덕분에 나도 학교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어떤 간식을 좋아하는지, 작년에 어떤 행사가 반응이 좋았는지, 내가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들을 하나둘 알려주었다. 도서부 원들을 찾아온 친구들까지 모여들면 점심시간 도서관은 금세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얼른, 이 아이들이 뭐라도 하나 얻어 갈 수 있게 해야겠다.'

그날 바로 이번 달 행사계획을 세우고 간식비 결재를 올렸다.

그렇게 시작된 '릴레이 필사'.

방법은 단순했다. 도서관에 들른 아이들이 쓰고 싶은 만큼 한 줄이라도 적고 가면 된다. 누군가 이어 쓰고, 아무도 없으면 내가 이어 쓰고. 그러면 작은 간식 하나를 받아 가는, 흔하지만 의미 있고 바카라에 관심을 가지면서 도서관에 마물 수 있는 행사였다.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 두 권과 시집 한 권을 골라 놓았다. 그 앞에는 원고지 노트 세 권을 펼쳐 두고, 부드러운 볼펜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자, 오늘부터 시작이다.'

그때였다.

"선생님, 제가 왔어요!"

도서관 문이 활짝 열렸다.


"왔구나!^^"

"오! 이거 뭐예요? 가서 쓰면 돼요?"

오늘도 해맑은 얼굴의 이연이였다.

"아, 쫌 귀찮긴 한데... 해볼까?"

혼잣말을 하더니 금세 또 묻는다.

"쓰기만 하면 간식 주는 거예요?"

"한 줄만 적어도 간식은 줘. 이연이가 첫 스타트다! 우리 도서관 첫 손님이잖아."

"오! 그럼 제가 먼저 쓸래요!"

이연이는 창가로 달려가 바카라들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나는 속으로 소설바카라을 고르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연이의 손이 멈춘 곳은, 뜻밖에도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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