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깨어난 사서 자격증

by수박씨

서울에서 다니던 회사는 아이 셋을 키우며 출퇴근하기에는 버거웠다. 남편도 프리랜서라 육아를 대신 맡아줄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안산으로 이사하면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섯 식구의 생계를 생각하면 나는 계속 일을 해야 했다.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독서지도사를 시작했다. 평생 배운 것이라고는 바카라과 교육뿐이었으니 다른 직종은 애초에 떠올리지도 못했다. 게다가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독서논술학원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많은데 학원이 없다고? 이 지역은 내가 먼저 자리 잡으면 되겠네.'

의욕은 넘쳤다. 당근마켓에서 바카라상과 바카라장을 사고, 프린터를 들이고, 홍보지를 만들었다. 북적이는 집 한쪽 방이 작은 교실로 바뀌었다.


'하루에 다섯 명만 모아도 한 팀은 되잖아. 하루 60만 원, 일주일이면 300만 원.'

꿈은 소박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학부모들은 내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시간에 수업을 원했고, 누군가 아이들을 봐준다 해도 세 아이가 뛰노는 집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초보 선생이라는 티는 숨길 수 없었다. 엄마들은 쉽게 등록하지 않았다.


결국 집에서 학생을 기다리는 대신 내가 학생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문 독서교사가 되었다.

유치원생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학년을 가리지 않고 수업했다. 시간표는 빼곡하게 채워졌지만, 다양한 학년을 준비하다 보니 수업이 없는 날에도 교재를 만들고 자료를 찾느라 쉬는 날이 없었다.

열심히 일했지만 손에 남는 돈은 월 150만 원 남짓.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이들을 충분히 돌볼 수도 없었다. 일과 삶의 경계는 점점 흐려졌고, 예민함만 쌓여 갔다.


그때 사서교사로 일하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안산으로 이사 갔다며? 거기 지금 학교 사서를 엄청 뽑고 있어. 지원자가 별로 없어서 자격증만 있으면 모셔 간다던데? 너도 한번 지원해 봐."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 잊고 있던 자격증 하나가 떠올랐다.


20년 동안 한 번도 써먹지 못했던 사서 자격증.

'이렇게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150만 원을 버느니, 같은 돈이라도 학교에서 정해진 시간만 일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게 낫겠다.'


그날 바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첫째 아이 학교의 사서도우미에 지원했다. '도우미쯤이야.' 하고 가볍게 생각했던 나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력서를 처음부터 다시 손봤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경력을 학교도서관 업무와 연결해 정리했고, 학교 도서관 시스템도 공부했다. 당장 도서관 문을 열어도 될 만큼 프로그램과 행사 계획까지 준비했다.


얼마 뒤 안산 외곽의 한 고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지원자는 단 두 명. 합격이다. 일주일에 세 번만 출근하면 되는 자리였다.


합격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출퇴근 거리가 멀었고, 막히는 길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손은 여전히 채용 공고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한 공고에서 손이 멈췄다.

안산여자중학교.

근무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간당 2만 원.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월 200만 원 정도였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할 수 있는 시간.


'여기다.'

마감 하루 전, 급히 이력서를 다시 수정해 이메일을 보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내일 면접 가능하실까요?"

학교도 사람을 급하게 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안산여자중학교의 사서가 되었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도, 열망도, 기대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내 삶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학생들을 사랑할 여유보다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릴 방법을 찾는 일이 더 급했다.


2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사서 자격증이 그제야 제 몫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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