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단에 묻은 진흙 발자국
계단에 진흙 발자국이 남아 있다.
밖을 다녀온 누군가의 신발 밑창이
무심코 이곳에 옮겨 놓은 축축한 문장이다.
일부러 남긴 기록도,
누구에게 보여주려 한 기별도 아니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동안
발은 제 소임에만 충실했을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남기는지는
생각할 틈도 없이.
그 보폭 사이에서
진흙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낯선 대리석 위에 옮겨졌다.
발자국은 아직 젖어 있어 형태가 제법 선명하다.
하지만 공기와 시간이 스며들면 가장자리부터
부서지기 쉬운 먼지로 변해 갈 것이다.
누군가의 다른 발길이 한 번 더 스치기만 해도
이 짧은 알리바이는 금세 흩어질지 모른다.
아무도 이 흔적의 주인을 수소문하지 않는다.
왜 이 계단을 지나왔는지도 굳이 묻지 않는다.
발자국은 설명 없이 그 자리에 있다가,
곧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잠시 멈춰 그 위태로운 형태를 내려다본다.
거기에는 대단한 의도도,
거창한 메시지도 없다.
다만 누군가 이 계단을 지나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래 남을 필요는 없다는 점만이
조용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