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인간의 어리석음은 지난 과오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과거의 수많은 전쟁이 비극으로 끝났음에도 오늘날에도 똑같은 일이 재현되고 있다.
이란 미나브 지역의 여자 초등학교에 '토마호크 미사일'이 떨어져 175명의 어린 생명이 몰살당했다. 어이없게도 미군이 10년 전 지도를 활용해 오폭을 저지른 탓이다.
현대의 전쟁은 더 비정해졌다. 미나브에 미사일을 떨어뜨린 것은 AI였다. 그것도 수백 km 밖에서 누른 버튼이었다. 지상군이 마주하지 않는 전쟁은 죄바카라감마저 분산시켰다.
낡은 지도 한 장이 아이들의 미래를 지워버린 이 허망한 비극 앞에서 나는 다비드 칼리의 그림바카라 <적>을 떠올렸다.
그림바카라 속 두 군인은 각자의 참호 속에 갇힌 채 매일 아침, 서로를 향해 총을 쏜다. 그들의 품속에는 권력자가 준 '지침서'가 들어 있다. 지침서 속에 설명된 적군은 여자와 아이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괴물로 묘사됐다.
이것은 개인이 도덕적 가바카라 없이 총을 쏘게 하려는 권력의 치밀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키웠다. 내가 살기 위해선 상대를 먼저 죽여야 한다는 강박이 그들을 '참호'라는 감옥에 가뒀다.
어느 밤, 군인은 참호 밖으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봤다. 그는 자신과 똑같은 별자리가 적의 참호 위에서도 반짝이는 걸 보았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상대를 먼저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위장술로 몸을 숨기고 적의 참호에 진입했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지침서에 적혀있던 괴물의 소굴이 아니었다.
적의 참호엔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족사진과 권력자에게 받은 '지침서'가 놓여 있었다. 상대가 내게 적이듯, 나 역시 상대에게 적이자 괴물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권력이 만들어낸 허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2년여, 우리는 정치가 만들어낸 일상의 참호 속에서 살았다. 이념의 색깔에 따라 양 갈래로 나뉘었고, 일상의 대화조차 검열하고 판단했다. 나 역시 실시간 뉴스에 예민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림바카라 속 군인이 올려다본 밤하늘의 별처럼 보편적인 아름다움에서 위로받고 싶은 강렬한 허기를 느낀 것이다.
최근 그런 허기는 선한 영화의 흥행이나 따뜻한 노랫말의 신곡들이 사랑받는 현상으로 발현됐다. 사람들은 영화를 n차 관람하고, 영화의 촬영지까지 그 발길이 이어졌다.
나는 그 모습이 마치, 증오로 가득 찼던 참호를 벗어난 사람들이 외친 심리적 종전 선언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소소한 삶의 기쁨과 슬픔, 인간 본연의 선함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이었다.
때로 나는 우리를 전쟁터로 보낸 사람들이 우리를 영영 잊어버린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몇 주 아니 몇 달째 대포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전쟁은 벌써 끝났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모두 죽고 적과 나, 이렇게 둘만 남아 계속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적> 중에서
전쟁의 지침서만 믿고, 참호 속에서 홀로 전쟁 중인 병사의 말에서 전쟁의 무모함과 통제된 도덕성의 무력함이 느껴졌다.
먼 나라의 전쟁 소식이 우리를 다시 불안하게 한다. 더 이상 지난 과오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나야 한다. 이제 증오가 가득했던 참호를 나온 이들이, 선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노래가 흐르는 일상에 머물길 바라본다.
[나를 달래는 기록 #11]
참호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적은 괴물이 아니었다. 우리와 똑같이 가족을 그리워하고 따뜻한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한 존재일 뿐이었다. 나는 일상의 참호에서 나와 내 안의 선한 본능을 따라 걷기로 한다. 시끄러워진 세상이 다시 권력의 지침서를 내밀더라도, 각자가 지켜낸 이 작은 평화가 가장 강력한 종전 선언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