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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든 해외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비행기와 숙소 예약을 마치고나면 구글맵을 켜고 가장 먼저 하는 의식이 있다. 그 지역에 내 위치를 설정해 둔 뒤 검색창에 '도서관'을 입력하는 일이다. 거창한 문학 기행을 기획하는 것도, 활자를 다루는 대단한 업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어느새 도서관은 타지에서도 묵묵히 찾아가는 가장 일상적이고 당연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내게 도서관은 최적의 놀이터였다. 지금보다 훨씬 활자에 열정적이었던 시절, 수많은 바카라의 숲을 마주할 때면 가슴 깊은 곳이 간질간질해지는 전율을 느끼곤 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이렇게나 광활하구나. 그 막연하고 웅장한 스케일은 위압적이라기보다 탐험가의 호기심을 부추기는 두근거림에 가까웠다. 우습지만 어린 시절부터 묘한 지적 허영심이 있었기에, 그저 수많은 장서 사이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한 겹 껴입은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이 공간을 사랑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도서관의 본래 목적과 부합하는 이런 순수한 이유들 말고도, 내가 이 공간을 유독 애틋하게 여기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유난히 예민하고 내향적이었던 나는 반드시 나만의 시공간이 확보되어야만 숨통이 트이는 아이였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허락된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집에는 가족들이, 학교와 학원에는 복작이는 친구들이 있었고, 어린 신분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카페 구석에서 여유를 부리는 일 따위는 허락되지 않았다.
궁리 끝에 내가 찾아낸 완벽한 숨구멍이 바로 '도서관 가기'였다.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데다 무척 건전한 성격을 지닌 공간이었으므로, 부모님께 "바람 좀 쐬고 올게요"라는 모호한 말 대신 "도서관에 바카라 빌려 올게요"라고 말하는 것은 퍽 당당하고 합법적인 산바카라의 명분이 되어주었다. 이어폰을 꾹 눌러 꽂고 도서관으로 향하던 길.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으려 발소리마저 조심하는 고요한 열람실에 앉아 오롯이 누리던 나만의 시간. 그곳은 벅찬 일상으로부터 나를 숨겨주는, 작지만 견고한 방공호였다.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도서관을 찾는다. 매일의 일상 루틴처럼 내 삶의 단단한 일부가 되어버린 곳이다. 그곳을 찾는 이유 역시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안에서는 그저 익명의 '방문객 1'이 되어, 누구를 방해하지도 누구에게 방해받지도 않은 채 고요히 나의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스스로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한 나는 굽은 등을 하고 집 근처 도서관으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안온한 나만의 방공호, 그곳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