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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유독 '빨강'이라는 색이 뿜어내는 강렬한 에너지가 있다. 구급차의 번쩍이는 불빛, 10% 아래로 뚝 떨어진 스마트폰의 새빨간 배터리 잔량, 가까이 가기를 경계하게 만드는 표지판의 굵은 글씨들. 이 세상의 수많은 빨강은 대개 위급하고, 위험하며, 섣불리 다가가서는 안 될 무언가의 기운을 품고 있는 듯하다. 우리에게 멈추거나 조심하라고 윽박지르는, 삶의 날카로운 경고등이다.
하지만 이 뾰족한 경고의 빨강을 일상의 안쪽으로 조금만 끌어당겨 보면, 색의 에너지는 전혀 다른 온도로 탈바꿈한다. 옷장 문을 열고 가을 딥 웜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분한 브릭 레드나 깊은 버건디 색상의 셔츠를 꺼내 입을 때, 그 붉은빛은 결코 나에게 위험을 경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깊고 묵직한 색감은 바깥세상의 서늘함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감싸주는 단단한 갑옷이 되어준다.
세상이 칠해둔 새빨간 색이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며 타인과 거리를 두게 만드는 방패라면, 내 일상 속에 스며든 깊은 붉은색은 스스로의 에너지를 조용히 끌어올리는 다정한 장작불과 같다. 방전된 배터리의 붉은색이 삶의 여백을 챙기며 잠시 쉬어가라는 시그널이라면, 내가 직접 선택해 몸에 두른 붉은색은 다시 하루를 씩씩하게 살아갈 동력을 채워주는 충전기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1인분의 삶을 온전히 바카라임지며 살아가는 방식도 이 빨강의 속성과 퍽 닮아 있다. 무례하게 선을 넘는 타인의 시선이나 통제할 수 없는 관계의 피로 앞에서는 단호하게 빨간불을 켜서 나를 방어한다. 반면, 내가 사랑하고 지켜내야 할 나만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는 깊고 따뜻한 붉은 온기를 가득 채워 넣는다.
결국 빨강이라는 색은 다가오지 말라는 단호한 밀어냄인 동시에, 내 안의 고유한 온도를 지키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끌어안음이다. 밖으로는 요란한 소음을 차단하고 안으로는 단단한 생기를 품는 이 모순적인 색채의 마법. 덕분에 나는 오늘도 적당히 멈춰 서고 또 적당히 나아가며, 삶의 붉은 불빛들을 무사히 통과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