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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자기기를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설정' 앱에 들어가 기본값을 내게 맞게 뜯어고치는 것이다. 눈이 부시지 않게 다크 모드를 켜고, 글자 크기를 눈에 편한 정도로 키우고, 요란한 기본 알림음을 조용한 진동으로 바꾼다. 제조사가 맞춰둔 이른바 '공장 초기화' 상태의 기본값은 대다수의 평균적인 사람들을 위해 무난하게 설계된 것일 뿐, 결코 나라는 고유한 개인에게 최적화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슬롯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우리가 태어나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꽤 견고하게 세팅된 생의 기본값들을 손에 쥐여준다. 적당한 시기에 보편적인 형태의 가정을 꾸리고, 남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성취를 이루며, 쉴 새 없이 다음 단계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그 궤도를 의심 없이 따라가며, 세상이 맞춰둔 화면의 밝기가 내 눈을 찔러와도 원래 다들 이렇게 참고 사는 거라며 꾸역꾸역 눈을 비비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 정해둔 이 기본값이 내게는 영 맞지 않는 뻣뻣한 옷이라는 것을 깨닫는 때가 온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화려한 옵션들이 내게는 그저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소음일 뿐이며, 세상이 요구하는 맹렬한 속도보다는 나만의 느릿한 보폭이 내 마음을 훨씬 편안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내 삶의 설정창을 열고 나만의 기본값을 다시 세팅하는 지난한 작업을 시작한다. 무리해서 관계의 폭을 넓히는 대신 혼자만의 고요한 충전 시간을 하루의 기본으로 삼고, 거창한 미래를 불안해하기보다 당장 오늘 저녁의 일상을 단단하게 챙기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튼다. 굳이 세상이 정답이라 부르는 궤도에 오르지 않고 나만의 독립적인 1인분의 삶을 쾌적하게 꾸려가는 것 역시, 타인의 기본값에서 벗어나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온도를 찾아낸 근사한 결과물이다.
물론 다수가 공유하는 기본값을 거슬러 나만의 맞춤 설정을 유지하는 일에는 약간의 수고로움이 따른다. 가끔은 타인의 오지랖이나 낡은 세상의 참견이 마치 시스템 업데이트 알림처럼 불쑥 튀어나와, 다시 다수가 속한 '공장 초기화' 상태로 돌아가라고 끈질기게 팝업창을 띄우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 성가심을 감수하고서라도 내 손으로 직접 튜닝한 일상은, 남이 맞춰둔 삶의 사이즈에 나를 억지로 구겨 넣고 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아늑함과 주도권을 안겨준다. 내게 불필요한 기능들은 과감히 꺼버리고, 진짜 원하는 것들에만 배터리를 쓰기로 결심한 자의 여유다.
그러니 누군가의 삶이 세상의 뻔한 궤도에서 조금 빗겨나 있다 해도, 그것은 결코 틀리거나 고장 난 것이 아니다. 그저 각자의 시력과 청력에 맞게 삶의 밝기와 볼륨을 아주 정교하고 깐깐하게 조절해 낸 훌륭한 결과물일 뿐이다.
기꺼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내 삶의 설정들을 나에게 딱 맞게 고쳐나가는 일. 어쩌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세상이 쥐여준 피곤한 기본값들을 지워내고 나만의 단단한 맞춤값을 하나씩 찾아가는 그 매력적인 과정 자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