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by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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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영화관이나 낯선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기는 색깔이 있다. 주변이 아무리 캄캄해져도 홀로 눈치 없이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초록색 비상구 마크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 불빛의 위치를 한 번 스윽 눈에 담고는 이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스크린에, 혹은 눈앞의 대화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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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실제로 그 묵직한 철문을 거칠게 밀어젖히고 비상계단을 향해 뛰쳐나가는 경험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문은 일상에서 가장 쓸모없고 먼지가 쌓인 공간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낯선 공간에 놓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그 초록빛 사각지대를 곁눈질하며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비상구의 진짜 쓸모는 ‘탈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비상구는 우리를 그 답답한 공간에 기꺼이 ‘머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안전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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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문이 밖에서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 절대 나갈 수 없는 방이라고 상상해 보자. 그 안에서 보는 영화가 아무리 훌륭하고 나누는 대화가 즐겁다 한들, 숨이 막히고 식은땀이 흐르는 패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명징한 사실 하나가 주어지는 순간, 공간의 질감은 완벽하게 달라진다. 갇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머물기를 선택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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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이지 않는 비상구의 법칙은 현대인들의 복잡한 일상과 관계 속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불편한 저녁 모임에 나가면서 "오늘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먼저 일어날 수도 있어"라고 미리 깔아두는 밑밥, 언제든 훌쩍 떠나거나 회사를 그만둘 수 있도록 통장 한구석에 남몰래 모아두는 얄팍한 비상금, 혹은 사람들의 소음이 버거워질 때 언제든 귀를 닫아버리기 위해 주머니 속에 챙겨둔 무선 이어폰 같은 것들. 이 모든 것들은 사실 삶의 위기에서 우릴 구출해 줄 거창한 동아줄이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조금 덜 숨 막히게 견뎌내기 위해 우리 스스로 삶의 모서리마다 달아둔 작은 초록빛 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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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끝까지 부딪혀보는 정면돌파만을 미덕이라 여겨, 늘 뒷문을 열어두려는 마음을 집중력이 부족하거나 무바카라임한 핑계쯤으로 가볍게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빠져나갈 구멍을 파두는 것은 결코 회피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어야 역설적으로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틸 힘이 생기는 법이다. 내 손으로 이 상황을 당장 종료할 수 있다는 그 얄팍한 통제권이, 팍팍한 현생을 의연하게 버텨낼 수 있는 든든한 등받이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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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마음속에 은밀하게 만들어둔 나만의 비상구들을 굳이 시멘트로 발라 막아버릴 필요는 없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그저 잘 닦아두고 가끔 불빛이 들어오는지 확인만 하면 그만이다. 그 작고 선명한 초록빛은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뛰쳐나가라는 요란한 경고등이 아니다. "언제든 네 발로 나갈 수 있으니, 지금은 조금 더 안심하고 머물러도 좋아"라고 등을 토닥이는,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다정한 위로의 불빛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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