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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무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앞의 사람에게서 훅 초점이 빗나갈 때가 있다. 상대는 무언가를 열띠게 쏟아내고 있는데, 시야는 점차 흐릿해지고 귓가에서는 스르륵 자체적인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켜진다. 그러다 내 멍한 눈빛을 눈치챈 상대가 확인 질문을 던지며 적극적인 호응을 요구해 올 때면, 아차 하는 느낌표의 바늘이 느슨해진 신경을 콕 찌르고 들어온다.
누구에게나 하루치 배당된 에너지의 총량이 있다. 고요한 시간을 보내며 촘촘하게 비축해 둔 에너지가 있어야만 바깥세상의 소란함을 견뎌낼 수 있는 법인데, 타인의 쏟아지는 말들에 매번 초집중 상태로 주파수를 맞추다 보면 오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마음이 방전되어 버린다. 수많은 자극과 사람들을 온종일 마주하며 살아내야 하는 일상에서, 밀려드는 모든 TMI를 하나하나 주워 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다.
물론 필요한 정보만 건조하게 주고받는 관계는 삭막하다. 쓸데없는 농담과 시시콜콜한 일상이 섞여들 때 관계는 비로소 윤기를 얻는다. 하지만 그 무해해 보이는 시시콜콜함도 일방적인 대량 폭격이 되면 듣는 이의 진을 빼놓는 소음이 된다. 우리는 종종 "이 사람은 내 편이니까, 가깝고 편하니까"라는 이유로 정제되지 않은 감정과 날것의 정보들을 너무 쉽게 투척하곤 한다. 그것이 내가 아끼는 사람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말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모든 시시콜콜함을 전부 쏟아내는 것이 꼭 친밀함의 증거는 아니다. 오히려 진짜 깊은 애정은 상대의 남은 에너지를 가늠해 보는 다정한 눈빛에서 나온다. 내 입을 맴도는 수십 마디의 말 중 굳이 건네지 않아도 될 말들을 조용히 걸러내고 삼키는 일. 그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피로한 하루를 보냈을 상대의 한정된 에너지를 아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러니 가까운 사이일수록 어느 정도 언어의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덜어내고 남은 빈자리에 정말 다정하고 밀도 높은 진심만을 남겨두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중한 관계를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끌고 갈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적정 TMI의 법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