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 적용

by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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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이나 행정 영역에서 주로 쓰이는 ‘소급적용’은 새롭게 만들어진 규정의 효력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똑같이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딱딱하고 건조한 이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문득 우리의 감정이나 깨달음에도 이런 제도가 도입된다면 어떨까 하는 실없는 상상을 하게 된다.


살다 보면 "그때 지금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하고 씁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지나고 나면 정말 별것 아닌 일에 밤잠을 설치고, 타인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앓아누웠던 날들. 만약 지금 내가 가진 이 무던함과 약간의 맷집을, 한껏 웅크려 있던 그때의 나에게 소급적용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 지나갈 테니 너무 앓지 마"라는 현재의 다정한 조언을 과거로 쏘아 보낼 수만 있다면, 그 시절의 나는 조금 덜 상처받고 덜 외로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은 결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깨달음은 늘 한발 늦게 도착하고, 우리는 겪어야 할 열병을 정직하게 모두 앓아낸 뒤에야 비로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과거의 나를 구제해 줄 소급적용의 마법 같은 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소급적용이 온전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사건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일에 덧씌워진 의미는 현재의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쓰이기 때문이다.


지우고 싶은 실패의 기억이나 미숙했던 실수도, 시간이 흘러 그것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된다. 부끄러운 과거라 치부했던 날들이 실은 나를 단단하게 제련하던 시간이었음을 인정할 때, 의미 없던 기억들은 비로소 쓸모 있는 경험으로 격상되어 내 삶에 온전히 편입된다.


그러니 지나간 궤적들에 대해 짙은 후회나 아쉬움을 오래 쥐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오늘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어제의 서툴렀던 나를 너그럽게 안아줄 때, 우리 삶의 가장 근사한 소급적용은 이미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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