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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를 가늠하게 하는 것들은 주로 우리의 오감과 맞닿아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 달라지는 자연의 색감, 입맛을 돋우는 제철 음식과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 심지어 길을 걷다 우연히 귓가에 스치는 노래들까지.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본능적인 것은 바로 '냄새'다.
새로 돋아난 꽃봉오리의 향기, 쏟아지는 빗물을 흠뻑 머금은 푸른 잎들의 피톤치드.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게 되는 은행의 고약함과 아찔한 금목서 향이 마구 뒤섞이는 가을, 그리고 걷기만 해도 마른 낙엽과 고소한 붕어빵 냄새가 듬뿍 배어드는 겨울까지.
한때 즐겨 듣던 뮤지션 버벌진트의 앨범 중에 <가을 냄새>라는 트랙이 있다. 보통 노래 제목에는 '냄새'보다 '향기'라는 예쁜 단어를 짝지어주기 마련이기에, 처음 그 제목을 들었을 때는 짐짓 고개를 갸우뚱했다. 찬찬히 노랫말을 곱씹어 보았다. 가을을 맞아 옛 연인과의 기억을 회상하는 애틋한 내용이었다. 그는 왜 굳이 '가을 향기'가 아닌 '가을 냄새'라는 투박한 단어를 택했을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린 나름의 결론은 이랬다. 그녀와의 기억에는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뿐만 아니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가항력적으로 남겨진 씁쓸하고 지우고 싶은 흔적들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향기'가 긍정적인 감각에 한정된 단어라면, '냄새'는 그 모든 좋고 나쁨을 끌어안는 더 넓고 지독한 단어니까.
생각해 보면 서두에 열거했던 계절의 냄새들 역시 나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수집된 것이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숨을 쉰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며들고 축적된 것들이다. 그것들은 삶 속에 깊이 녹아들어, 세상의 미세한 변화를 더 입체적으로 감각하게 만든다. 만약 내 코끝에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들만 선택적으로 입력되었다면, 세상을 이토록 다양하고 민감하게 느끼며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냄새가 '불가항력'의 영역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나도 모르는 사이 불쑥 찾아와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이 낯선 자극들 덕분에, 우리는 더 다채롭고 짙은 삶의 결을 끌어안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일 테니.